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Sep 29. 2024

벌금 1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오래도록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것은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택도 없을 것이다.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새로운 일을 배우며 세상엔 거저 되는 일, 공짜는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었다.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다 이번 주말은 여유로운 호사를 누려볼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아내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평온한 시간도 잠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정을 알리듯 전화벨이 급하게 울렸다. 형이었다. 형의 흥분된 목소리는 전화기를 통해 난데없이 뛰쳐나왔다. 


“큰일 났어! 벌금 500만 원이 나왔어!” 

“응? 500만 원! 그게 무슨 얘기야?” 

난데없이 벌금 500만 원이 나왔다는 말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벌금 500만 원이 나왔다니까!”


형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는 지난번 벌금 20만 원을 납부한 기억이 났다. 20만 원도 우리 형편엔 적은 돈이 아니었는데 난데없이 500만 원이라는 말은 믿기지 않았다.


“지난번에 20만 원은 납부를 했는데 500만 원은 뭐죠?”

“나도 몰라 이놈들이 사람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 같아!” 

“고지서가 나왔어요?”

“응 지난번에도 나왔었는데 이번에 또 나왔어”

“지난번에?, 벌금고지서가 500만 원씩이나 나왔다는 이야기는 안 했잖아요?”

“응 이놈들이 잘못 보냈는지 알았지! 근데 또 나왔어!”


형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형에게 고지서가 있느냐고 물었고 고지서를 보면 알 수 있으니까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흥분한 형에게는 신경 쓰지 말라고 안정시켰다. 형의 말대로 누군가가 놀리기 위한 장난이었으면 하는 마음마저 간절히 들었다.

토요일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생각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형의 집에 들렀을 때 정말 믿기지 않는 금액의 고지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벌과금납부명령서 및 영수증(납부자용)

종류: 벌금 

금액 5,000,000원 

00 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집행과장

2023년 7월 28일

형은 이 고지서가 왜 날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때 몇 개월 전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비워져 있던 위층에 들락거리며, 자신을 도청하고 감시하며 괴롭히던 사람들이 출입을 못하도록 현관문에 나사못을 몇 개를 박았다고 했었다. 그리고 인터넷과 컴퓨터로 도청하지 못하도록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망가트린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 일로 경찰서에 다녀왔고 잘 해결되어 훈방 조치되었다고 했었던 일들이다. 


아마도 현관문에 나사못을 박은 것과 전원장치들을 파손한 것들이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아닌 어느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별도의 일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형이 경찰서에 갔을 때 왜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형은 경찰서에 가서 잘 이야기되었고 훈방처리 되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었다고 했다. 내가 그 당시 형에게 들은 이야기도 거기까지였었다. 형은 잔뜩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다. 형은 고지서에 있는 검찰청연락처로 전화를 해서 훈방조치 된 일을 왜 벌금을 부과했냐며 못 내겠다고 했단다.

 

나는 이 일들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반적인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벌금을 부과한 검찰청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만 이해될 것 같았다. 형의 의식 대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고 500만 원이라는 벌금을 어떻게 부과받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가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형은 500만 원을 감당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물론 나에게도 그 금액은 감당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전 02화 DNA채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