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Sep 06. 2024

DNA채취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형은 새벽 3시면 잠에서 깬다고 했다. 쉴 새 없이 욕하는 소리가 형을 잠에서 깨운다고 했다. 심지어 틀어놓은 선풍기에서도 그 목소리는 계속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형의 예민함은 나날이 정도가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지만 요즘 집수리 일이 꾸준히 있다 보니 시간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형이 지난해 내가 모르는 사이 가택침입과 특수손괴죄로 벌금형을 맞았다. 벌금은 대출을 내어 급하게 처리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검찰에서 계속해서 발송되는 독촉우편물에 형의 불안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벌금을 내지 않고서는 강금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형을 더욱 과민하게 만들었고 형의 유일한 보호자인 내가 감수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이자가 얼마였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나는 대출을 받아 벌금을 내고야 말았다.


벌금을 내고 나서 형은 안정감을 찾아가는 듯했으나 얼마 전 또 한통의 우편이 검찰청에서 날아왔다. 이번엔 DNA채취를 하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잖아도 불안정한 형은 더욱 과민해지기 시작했다. 형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 신경 쓰고 힘든 일이 어떤 것이 있냐는 말을 듣고서야 실토했다.


형은 검찰청이 멀어서 혼자 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도 말이다. 형이 혼자 간다면 자신이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은 자신의 의중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형은 어느 시점에서 의식의 성장을 멈춘 듯 어려움에 처하면 피해서 도망가거나 짜증부터 내고 본다. 오늘은 DNA채취를 위해 형과 함께 검찰청에 방문했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간단한 확인과 함께 DNA채취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형은 DNA채취를 한다고 자신에게 도청주사액을 놓는 것이 아니냐며 긴장했다. 간단하게 면봉으로 입안을 흝으면 되는 거라고 해도 형은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잠시 기다린 후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100원짜리 동전크기의 막대사탕 같은 면봉을 입에 물었다 달라고 했다. 형이 입에 넣었다 뺀 후 여성에게 넘겼으나 다시 물고 있다가 침을 충분히 적신 후에 달라고 한다. 긴장한 탓에 형은 입이 마른 듯했다. 한참을 물고 있다 면봉을 넘겼다. 여성이 다른 종이로 면봉을 감싸고 꾹 눌렀다 때면서 됐다고 말했다. 정말 간단한 절차였다. 그동안 형이 두려워한 과민반응에 비하면 한심하리 만큼 어처구니없는 사소한 절차였다. 형이 이 간소한 절차를 스스로 하기란 힘들 것이다.  


검찰청을 나와 걷다 보니 형이 저만치 뒷쳐저 따라오고 있었다.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해도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질 않는다. 기다렸다 형과 함께 나란히 템포를 맞혀 걸었다. 형이 앞서가기 시작한다. 같이 가자고 내가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형이 하기 힘들어하는 일들 중 하나가 같이 나란히 발맞춰 걷는 일이다. 형에게 속이 시원하냐고 물었더니 이게 다였냐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시원하지 뭐"라고 짧게 대답한다. 간단한 대화가 형과 함께 발맞춰 걷는 방법인 것이다.

형에게 지난번 같은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기면 동생이 보호자라고 동생한테 연락해 달라고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형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이 분했는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훈방해 준다면서 사인하라고 해서 했더니 훈방이 아니었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동생한테 연락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후에 우리는 평소에 자주 가는 한식집에 들러 따끈한 굴국밥을 먹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