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Oct 13. 2024

벌금 3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

오후 5시 33분, 집에 도착해 김길동경위의 직통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온몸의 신경이 귀에 집중되었다. 분명 “김길동형사입니다.”라고 받았다. 이 목소리는 아까 2시 28분에 전화했을 때의 목소리다. 나는 잠시 여유를 두고 말했다. “김길동경위님? 자리에 계셨군요!” 했더니 자신은 이길동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까 말했듯이 김길동경위는 18시에 출근한다고 하면서 좀 전에 와서 근무 교대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내가 잘못 들었던 것일까! 앞뒤가 맞질 않는다. 김길동경위의 자리에서 울리는 전화는 본인이 없더라도 자리의 주인이라고 전화를 받는 관행이라도 있단 말인가? 형 집을 출발해 집에 오던 오후 4시 16분경에 형과 통화한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의문이 들었다.


오후 5시 40분,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김길동형사라고 하며 낯선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Y의 동생이라고 소개하고 사건경위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하니 아까 본인이 형과 통화했다고 한다. 18시에 출근한다는 사람이 오후 4시경에 형과 통화한 사실이 맞았다. 어찌 된 일일까? 이 사람들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1월에 있었던 일은 본인이 담당이 아니라고 했다. 2월에 있었던 일은 자신이 담당했다고 했다.

동생인 내가 몰라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하니 김길동경위는 형은 나와 연락을 안 하고 지낸다고 해서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과 나, 우리는 매일 통화를 하고 있다. 김길동경위의 이 말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새빨간 거짓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형이 정신장애인이고 보호자인 동생이 있고 영구임대아파트도 동생이 신청해 입주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담당 형사가 보호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형은 경찰서에서 어떤 절차에 따라 조사를 받았을까? 더 큰 의문이 들었다.


형은 훈방조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다. 김길동경위는 사건경위를 다 말했고 이 지장을 찍고 돌아갔다고 했단다. 같은 비어있던 세대에 또다시 침입하고 손괴한 일이 재발하여 더 크게 가중된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 피해액이 몇 백은 넘었었다고 들었다고 했단다.

그는 업무가 많은데 이런 일로 형이 전화하고 동생이 또 전화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불쾌해했다. 


나는 오해 없기를 바란다며, 형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벌금 500만 원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 담당 형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했다. 형사분은 벌금은 검찰로 넘어가 검사와 판사가 구형하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한다.

조서를 꾸미고 지장을 찍게 한 담당형사인 본인과는 아무 관계없다는 말인가!


특수한 상황에 사회적 약자의 편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각자도생이라고 했던가! 알아서 살아가고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김길동경위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형은 형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형을 20년이 넘도록 진료해 주시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셨다. 그 후 몇 개월 간격으로 두 분의 선생님이 바뀌셨다. 형은 선생님들과 라포형성에 힘들어했고 나와 동행하여 병원 가는 날에도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못 간다고 했었다.


같은 시기 바로 위층에서는 리모델링공사가 진행되었고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너무 힘들었던 날들이었다. 그 후유증으로 밤에도(밤에는 공사를 안 함) 잠을 잘 수 없어 관리사무소에 가서 힘듦을 이야기했었다고 했다. 낮 시간에 쉴 수 있게 안내된 호수에 가보았으나 인기척은 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고 했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더욱 힘들어졌다고 했다.


밤에 공사를 하던 위층에 올라가 보니 잠겨있어야 할 집이 열려 있었다고 했다. 열려있는 세대에 자신을 감사하고 도청하는 사람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현관문에 나사못을 박아 고정했다고 했다.

그 후에도 공사 후 밤에는 위층에 출입문이 여전히 열려있었다고 했다. 문이 열려있어 누군가 들어와 컴퓨터를 사용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도청하고 감시한다고 했다. 컴퓨터를 못 쓰게 전기콘센트들을 전부 뽑아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이 커지게 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나는 이때 즈음 서점에서 근무했고 일에 적응하느냐 마음의 여유가 없이 바빴었다. 늦게 퇴근하다 보니 형과 충분한 통화도 어려웠었다.


형의 일! 우리의 일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 일로 언제까지 쫓아다니며 알아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정신장애인인 형이 사회봉사를 하며 납부를 대신하기도 어렵다. 압류당할 재산도 없다. 법원에 쫓아가 정식재판을 신청하고 기다리고 형 자신을 변호하고 하는 부분도 나와 같이 해야 하는 일들이고 그렇다고 더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먹고살아야 했기에 일을 그만두거나 멈출 수도 없었다.


이때쯤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좋지 않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살아남아야 한다. 500만 원이라는 금액은 크기도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하면 또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형은 이 일로 매우 불안정해져 갔다. 하루속히 이 부담감에서 형을 탈출시켜야 형도 살고 나도 살 것 같았다.


꾸준히 납부하던 보험이 있다. 알아보니 보험금 담보대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율은 높지만 일단 이것으로 법무부국고금 500만 원 벌금을 물고 차후에 조금씩 갚아나가면 될 것 같았다.


형과 긴 통화를 하며 1차 사건과 2차 사건을 설명해 줬다. 형은 경찰서에서 담당형사로부터 훈방 처리된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해하기 힘든 결과에 마음의 상처가 매우 큰 듯했다. 훈방이 500만 원 벌금이냐며 그 말만 계속해서 반복한다. 하지만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니 반성하고 그에 합당한 벌은 받아야 한다고 이해시켰고 형도 인정한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형에게 사고 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만약! 만약에! 이번 같은 일이 생기면 숨기지 말라고 했다. 가족인 나에게 바로 연락하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또 살아지게 되겠지.


ps

나는 형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려고 내 일(집수리공)을 준비했다. 서점일도 그런 이유로 시작했었는데 생각 같지 않아 내려놓았다. 형과 언제든 통화하고 때로는 동행도 가능한 일이 그것이다. 앞으로 험난한 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전 04화 벌금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