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잠결에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우리를 향해 다가와 멈추는 것을 느꼈다.
“설상호 환자분”
또렷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파란색 수술복을 입은 3-4명의 남자들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어두운 병실 안 두건 쓴 남자의 눈동자가 취침 등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병원 홈페이지에서 봤던 ‘김교수님’이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너무 아파요… “
남편의 목소리가 흐느끼듯 떨린다.
김교수님은 남편과 눈을 마주친 채 고개를 끄덕인 후 어깨를 쓰다듬듯 두드렸다.
“조금만 힘내세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나간 후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손을 잡았다.
커튼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환자분 혈압이랑 체온 좀 잴게요.”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다.
‘4시간을 연속으로 자다니.’
“일어났어?”
남편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다.
“보호자분 이 차트에 환자분 오줌 양, 대변 상태, 마신 물의 양, 식사량 빠짐없이 기입해 주세요.”
“보호자분 식사 신청 하시겠어요?”
“제 것도 신청하면 되나요?”
“환자분은 여러 가지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금식이에요.”
“당신아, 그럼 당신이라도 밥 챙겨 먹는 걸로 하자. 당신이 아프면 안 돼. 알았지?”
“그래. “
병원의 하루는 5시부터 시작이었다.
“잠은 좀 잤어? 통증은 어때?”
“응, 좀 잤어. 아프긴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참을 만 해.”
주위를 둘러보니 침대맡에 환자이름, 담당과, 담당교수, 주치의 이름이 적혀있다.
‘담당과… 혈액종양내과? 신경외과가 아니고? 뭔가 과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때까지는 환자가 담당과를 정하는 것인지 알았다.
응급실을 통해 올라가면 초진의 경우 응급실 주치의가 적절한 과로 배정한다는 것을 몰랐다.
6시 커튼이 열리고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바닥 청소를 한 후 쓰레기통을 비워갔다.
7시 커튼이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전 환자분 주치의입니다. 통증은 좀 어떠세요?”
동그란 금테 안경에 하얀 얼굴, 선한 교회오빠 인상이다.
“많이 좋아졌어요. 저, 배가 너무 고픈데 식사는 언제부터 할 수 있나요?”
“일단 검사할 것이 많아서요, 일단 금식 유지해야 할 것 같아요.”
“잠시 후 회진 때 뵙겠습니다.”
8시 반 멀리서 남편 이름을 부르는 옅은 목소리가 들렸다.
“설상호 환자분.”
커튼을 열며 단발머리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의사가운 주머니에 종양내과 권교수라고 적혀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하얀색 옥스퍼드 셔츠엔 구김 한 점 없었고, 단추를 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웠다.
셔츠만큼 핏이 적당한 회색 팬츠는 복숭아뼈 위치에 맞춰 완벽하게 떨어졌다.
갸름한 얼굴에 쌍꺼풀 없이 차분한 긴 눈이 상호 씨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 시간 전에 왔던 주치의 선생님이 교수님 뒤에 서 있다.
“컨디션은 어떠세요.”
“등이 여전히 아프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졌어요.”
“최고의 고통이 10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6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스테로이드제를 투약해서 고통은 좀 완화 됐을 거예요.”
“하지만 일시적이고, 스테로이드를 계속 사용할 수는 없어요.”
“전 병원에서 CT를 찍긴 했던데 신장수치가 안 좋아서인지 조영제 없이 찍었더군요. 신장수치가 안정 됐으니, 자세한 진단을 위해 조영제를 써서 CT를 찍어보죠.”
CT를 찍어야 한다는 말에 남편 표정이 굳어졌다.
“검사하기 전 충분한 진통제를 맞고 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집이 안산이던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됐나요?”
“2차 병원 선생님으로부터 척추 암 수술로 유명한 교수님 추천받아 이 병원으로 왔어요. 당장 배드 여유가 있다고도 하셨고요.”
한참 아무 말도 없다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셨다.
잠시 후 CT를 찍기 위해 침대로 내려갔다.
영상의학과 선생님에게 매뉴얼 읊듯이 말했다.
“남편 등 전체에 암이 퍼져 조금만 스쳐도 고통이 심해요. 들지 말고 단차 없이 옆으로 옮겨야 해요. 부탁드려요.”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조심해서 환자분 고통스럽지 않게 잘해볼게요.”
남자분 한 분이 더 들어왔고, 나는 남편의 머리와 베개, 시트를 품에 안았다.
다른 한분은 옆에서, 다른 분은 다리 쪽 시트를 잡았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세 명이 동시에 CT 배드로 옮겼다.
“윽!. 어? 좋아요!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남편이 엄지를 들어 올렸다.
엑스레이 촬영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남편 같은 케이스를 많이 경험한 듯 모두 노련했다.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편은 흥분해 있었다.
“이 병원으로 오기 정말 잘했어. 완전 베테랑 들이야.”
섬세한 성격의 남편을 만족시키지 쉽지 않은데, 다행이다.
점점 병원에 어둠이 내리자 남편의 통증은 다시 시작됐다.
최고의 고통이 10이라면 8, 9 사이를 오갔다.
모르핀도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