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안 하면 3개월, 항암을 하면 1년

by 마리

밤이 되자 남편의 상태는 180도 달라졌다.

어둠은 고통이란 그림자를 끌고 남편의 침실로 올라갔다.

밤새 남편 침대 주위를 돌며 미세한 옷 주름을 폈다. 실제 주름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었다.

하나의 진통제는 최소 4시간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간과 신장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남편에겐 진통효과가 1시간이 채 유지되지 않았다.

“진통제가 잘 듣지 않아. 빨리 간호사 선생님한테 더 달라고 얘기해 줘.”

“진통제 맞은 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어. 조금만 견뎌보자.”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면 이렇게 얘기를 하겠어!”

남편의 신경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밤새도록 간호스테이션과 남편의 침실을 오가며 안절부절못했다.

새벽 5시 남편이 지쳐 잠들고, 나는 타인의 몸에 빙의 한 유령처럼 내 몸 같지 않았다.

병원의 하루는 1년 365일 하루도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시작된다.

담당 간호사가 체온, 혈압, 산소포화도, 수액상태를 체크한다.

그 사이 엑스레이를 찍고 올라온다.

7시엔 주치의 선생님 회진, 7시에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후 빠르게 지하 1층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지하 1층엔 죽집, 식당, 카페와 베이커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 편에 바로 보이는 카페로 간다.

‘빅사이즈 아이스아메리카노 3천 원’


지금의 회사를 다니는 10여 년 동안 출근을 하자마자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머신 앞으로 갔다.

하이드로플라스크 스카이 블루 텀블러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물을 70프로 정도 채운다.

크레마가 적당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후 얼음 위에 천천히 붓는다.

하루 딱 한 잔이다.

나에게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과 같았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 한 이후 낮과 밤이 사라졌다.

끝나지 않은 하루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커피의 전과 후로 하루를 구분해야만 했다.

힘든 어제를 끝내고,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되길 희망하면서.


8시 반 담당교수님 회진시간.

6인실 문 바로 앞에서 다정하게 남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설상호 환자분.”

남편의 통증에 대해 묻고는 손바닥 크기의 스프링 노트에 한마디 놓치지 않고 적어 내려간다.

남편이 간밤의 고통에 대해 설명이 끝나자 침묵이 이어졌다.

깊은 생각에 빠진 옆모습.

“저, 보호자분 잠시 밖에서 저 좀 뵐까요?”


간호스테이션 안 왼편에 책상 여섯 개를 길게 붙인 자리로 따라갔다.

각 책상마다 모니터가 두 개씩 켜져 있고, 한 자리에 교수님과 나는 나란히 앉았다.

프로그램을 열어 그동안 남편이 받은 CT, PET-CT, MRI 사진을 보여줬다.

남편의 상태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셨고, 나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질문했다.

그때마다 바지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하게 가위로 자른 이면지를 꺼내 단어와 그림을 그리며 설명해 주셨다.


“남편분이 입원하시고 정확한 상태를 알기 위해 PET-CT를 추가했어요.”

“이 사진을 보면 머리뼈, 팔, 다리뼈를 제외한 목부터 꼬리뼈까지 뼈 전체에 스프레이로 흩뿌린 것처럼 종양이 분포되어 있어요. 갈비뼈, 날개뼈, 골반뼈, 어깨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뼈 외에 다른 장기에 전이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뼈에 흩뿌려진 상태로 보면 혈액암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는데요, 암표지자수치 중 위암 피크가 높게 나온 걸 보면 위암에서 시작되어 뼈로 전이된 것일 수도 있어요.”

“오늘 위 내시경 하면서 조직을 깊게 여러 군데에서 채취할 예정입니다.”

“선생님, 몇 개월 전 받았던 위 내시경에서 암 소견은 없었는데요?”

“보통 위암의 경우 위 점막에 생겨 내시경으로 발견되기 쉬운데요, 간혹 점막이 아니라 바깥 근육을 타고 넓게 퍼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엔 내시경으로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젊은 위암 환자분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위암이 내시경으로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환자분 상태로 봤을 때 항암을 안 하면 3개월, 항암을 하면 1년 정도 생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나는 얼굴 근육이 마비된 듯 정지된 채 눈에는 선생님 얼굴만 가득 찼다.

나보다 선생님 표정이 더 힘들어 보였다.

“항암 잘 받으면 나을 수 있는 거죠?”

“항암이 잘 들으면 1년 정도 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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