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돌아오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뭐 하다 이제 와?”
“나 너무 배고파. 편의점 가서 말이김밥 사다주라.”
장난기 가득한 말투, 탄력 있는 하얀 피부, 건장한 뼈대까지.
타고난 골격이 좋아 평생 운동을 안 했어도 종합검진을 하면 근육량이 평균 남성보다 높게 나왔다.
남편은 40대 초반이지만 처음 본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봤다.
남편 몸을 찬찬히 훑어봤다.
죽음의 그림자는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하다.
불안함은 내 등에 붙어 하루종일 따라다녔다.
“까똑!”
“요즘 왜 이렇게 잠잠해. 무슨 일 있어?”
고등학생 때부터 절친인 지현이 었다.
전화기를 들고 병실을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비상계단으로 갔다.
지현이에게 전화를 걸면서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가슴부터 혈관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빠르게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지현이가 전화를 받자 입에서 뱉어내 듯 쏟아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한테 이래, 왜!”
“사람을 죽인 살인마도 잘 살아있고, 더 나쁜 새끼들도 다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내 딸은 어떻게 하라고!”
누구인지도 모를 상대를 향해 욕을 했다.
한참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지현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갈까? 가도 돼?”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차분 해졌다.
“이제 괜찮아졌어. 지금은 남편을 잠시도 혼자 둘 수 없네. 고마워.”
석 달 전 남편은 할 말이 있다고 아파트 후문 앞 치킨집으로 날 불러냈다.
“당신아, 나 너무 힘드네. 주말도 없이 이렇게 출장 다니는 거… ”
“몸도 예전 같지 않고… ”
“나 퇴사하고 좀 쉬면 안 될까?”
“하아… 당신만 힘들어? 매일 서울까지 왕복 4시간씩 출퇴근하는 나는?”
“지하철 사람들 사이 콩나물시루처럼 끼어서 가다가 현기증이 나서 중간에 내렸던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설이 초등학교 1학년이야. 지금부터 평생 돈으로 키워야 하는 거 몰라?”
“당신은 어쩜 이렇게 책임감이 없니?”
큰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교수님의 진단에 대해 얘기하자, 서글피 울었다. 울음 끝에 나온 얘기는,
“간병인은 알아봤어요?”
“언제까지 올케가 거기 있을 수는 없잖아요.”
“올케 출근도 해야 하고, 혼자 상호까지 돌볼 수는 없죠.”
숨을 삼킨 후 긴 한숨을 토해내듯,
“이제 설이한테 엄마밖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
형님말이 맞다.
진단대로라면 이제 설이는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하고, 설이를 어른으로 키워내야 한다.
그런데, 저 상태의 상호 씨가 완치가 보장되지 않는 치료를 견뎌낼 수 있을까.
타인에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성격에 중국교포 간병인을 의지하며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낯선 지역, 병원에서 나 없이 혼자 있을 수 있을까?
아파도 혼자 참아내다 잘못될 것이 분명하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 얼굴이 심각하다.
“사실대로 말해 줘. 오전 회진 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