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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l 16. 2024

장마

지속되는 장마는 벌써 며칠째 비를 몰고 오지 않고 있다. 한 날 지방에 비피해를 주며 잔인하게 존재감을 뽐냈지만 대부분의 날에 습한 공기로만 짙누르며 질식사할 것 같은 날씨의 옷을 입었다. 오늘 오랜만에 반짝이는 해가 들었다. 새벽부터 부서지는 햇살이 베란다 우드테이블 위로, 라탄의자 위로, 식물은 오래전에 죽어 마른 흙만 품고 있는 작은 화분의 사각면으로. 


어쩌면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을지 모를 빛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빛은 많이 새롭고 낯설다. 표현하지 못하던 빛을 품고 있는 물건들이 햇살을 핑계로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 소용없는 느낌은 왜 이렇게 아무 데서나 방황하는 것일까. 나는 문득 현실을 살고 있는가 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답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다가 두근거리는 심장의 역동성을 느끼면 사물이 아니며 어떤 사물도 이해할 수 없는 동물에 속하는 진지한 생명임을 자각한다.


생명체라는 사실이 문득 슬퍼지는 건 사랑할 수 없는 가슴의 비애를 깨달았을 때이다. 오늘의 빛처럼 쏟아지는 날이 있어 품은 마음을 내놓아도 좋을 때가 있을까.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세상에 등을 지고서라도 나를 던질 수 있는 사랑의 용기가 내게 있었던 때의 영혼을 소환해도 좋을 때가 온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과거라고 불리는 통칭으로 버리기엔 망설여지는 감정이 있다.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살아 숨 쉬며 나를 살게 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자극하는 감정이 장마에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에 더 빛나는 무의미한 사물처럼 빛나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감정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사랑이 없을 때도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이 있으면 활활 태워지는 사람이다. 누가 내게 그런 형태는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에 대해서 강론을 한다면 오히려 그의 감정에 사랑이 있는가에 대해 의심할 것이다. 타 죽을 만큼 비루한 감정이 사랑이고 그 비루함이 다정함을 만들고 아름다움을 짓는다. 사랑의 형태에 그런 것은 없다고 신도 가늠할 수 없을 감정을 누구라서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장마에 뜨거운 햇살을 몰고 갑자기 여름이 들썩이니 내 마음에 있는 계절이 불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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