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봄날의 책
자부심은 스스로의 위대함에 대한 감성적 확신이다. 허영심은 타인들이 우리에게서 그 위대함을 느낀다는 감성적 확신이다.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자부심에 대한 나의 집착은 나를 바로 세우기에서 비롯되었다. 강한 자존심에 부러지더라도 옳지 않다 생각되는 것에 굽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방패는 놓고 창만 들고 서 있는 병정처럼 벌벌 떨며, 내게 공격이 들어온다 싶은 모든 언어와 상황을 무작위로 찔러댔다.
무참하게 찔러대는 창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의 가죽을 뚫고 살과 뼈를 찔러 피를 튀겼다. 그 피는 방패 없는 내게 고스란히 튀었고 나는 다시 그 피에 놀라 창을 휘저어 댔다. 전쟁에서는 누구도 이기지 못했지만 나는 졌고 허허벌판에 스러졌다.
나의 전쟁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곳에서 끝났다.
자존감은 내팽개쳐졌다. 아니, 처음부터 자존감의 손실로 벌어진 전쟁이었는 지도 모른다. 내게 당당하지 못했던, 나의 위대함을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손상을 입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부러진 창이 내 심장에 꽂혀 있음을 발견했다.
자부심을 잃은 사람은 허영심도 없다. 분수에 넘치지도 않지만 자신감을 갖지도 못한다. 그런 삶에는 에너지도 흐르지 않는다. 스스로 확신하고 스스로 깨우쳐야 자신의 위대함과 타인의 부러움이 보인다.
오늘에야 살아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생기가 넘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애처로웠던 영혼의 상처뿐인 패배의 기억은 타인으로 인한 것이 아닌 나로부터의 실패였음을 깨닫는 날로부터 나는 성장해 왔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많이 하지는 못한다는 말을 곧잘 한다. 독서가 부르는 글 때문이다. 좋은 책을 만났을 때는 더 그렇다. 끝없는 사고의 끈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깨우고 또 다른 글을 부른다. 나는 책을 읽다가 또다시 멈추고 나의 글을 쓰고 있다. 불안의 서에서 시작한 자부심과 허영심에 대한 나의 서사를 늘어놓고 나서야 다시 책으로 향한다.
내가 나임을 깨닫게 하는 글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부끄러운 나의 토로는 좋은 책으로 인해 얻은 오늘의 큰 수확이기도 하다.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책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