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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Oct 01. 2024

불안을 잠재우는 불안의 서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책을 다 읽고서 제목을 몇 번이나 되뇐다. 불안의 서, 불안의 서, 불안의 서... 불안의 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산문시와 같은 글이 가득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보조회계원 베르나르두 소아레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페소아를 대신하는, 작가와 유사한 성향을 가진 이 글의 주인공이자 글을 써나가는 인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책을 읽는 순간부터 인물의 이름이나 이 책의 전개가 남다르다는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두서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의 처음과 중간과 끝 어느 시점에서도 멈출 수 없는 마력을 가진 문체에 매료되어 있었을 뿐이다.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는 고백과 망상이 펼쳐지는 듯한 글은 급속도로 나를 흡수했다. 이 책 뭐지? 일기인가? 자서전인가? 하며 읽기 시작한 나는 이미 벗어날 수 없는 한 남자의 불안의 늪에 빠져 있었다.  


생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불안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불안은 삶의 구석구석에 존재하며 삶에서 멀어지는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에 좁은 틈만 생겨도 파고 들어온다. 남자의 불안은 깊고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망상 같은 것에 붙들여 있었다. 


나는 가끔 이 책을 읽는 것을 멈춰야 하나 라는 고민을 했다. 글은 나를 불안 속에 잠식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삶에 대한 애착과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고구마줄기처럼 엮어져 나오는 끊임없는 불안의 독백은 삶을 계속해서 돌아보게 하였고 마침내 그렇게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의 '미'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였다. E 마이너의 강렬한 독백은 책을 읽는 나를 오히려 행복하게 하였다.


... 나의 감각이 너무도 강렬하여 쾌감조차도 고통스럽다. 나의 감각이 너무도 강렬하여 슬픔마저도 행복하다. P.439


문장 하나하나에 독약의 냄새가 묻어 있었고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열 개의 글을 썼다. 책의 말미로 갈수록 이 건조한 남자가 원하는 것은 역시 삶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까지 나는 여러 번 혼돈의 시간을 지나왔고 그 남자의 방에 앉아 낡은 종이에 적힌 수많은 글을 읽었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해도 팔다리는 움직여야 하니까. 고립으로 인해 거스르지 않던 극히 무의미한 일조차 이제는 재앙처럼 느껴졌다. 나는 잘못된 탈출로를 택한 것이다. 불편하게 우회하는 경로를 통해 탈주를 감행하였으나 결국 원래의 출발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곳에서 락을 소진하여 심신의 쇠약까지 얻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자살을 해결책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 삶에 대한 나의 증오는 삶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P.763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단어들은 독백, 고독, 저항, 외로움, 처절함, 어둠, 불안 정도였다. 여기에서 생소한 느낌의 단어 하나 저항. 저자는 고독하고 상상과 망상이 많은 인물이었으며 또 그것에 멈추지 않고 저항하는 속성을 가진 강인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냉소적이거나 염세적인 시선이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당신이 우울증, 분열 등이 떠오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동질감을 느낄까? 나는 누구에게 이 책을 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내 안에 담고 또 담고 꺼내보고 싶은 책 한 권. 내게 불안의 서는 읽지 않았다면 반드시 후회했을 마음의 지도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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