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이 책의 역사적인 관점은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불안하고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운명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뒤엉켜 버린 남녀의 개인사로 시각을 달리해 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내 의식은 있어야 할 선명한 사실에 집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봉긋 솟아있는 이 언덕은 잘가요 언덕입니다.'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내레이션을 따라 순이의 삶을 엿보는 느낌으로 전개된다. 이야기의 초반에 평화롭고 전원적인 묘사가 그득하다. 그것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듯한 나의 조급함 때문이었다.
호랑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순이는 순박하고 정스런 시골 소녀이다. 용이는 아버지와 함께 백 호랑이를 잡으러 마을에 찾아온 호랑이 사냥꾼의 아들이자 어린 사냥꾼이기도 하다. 열두 살의 순이를 만나고,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아버지와 마을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났다가 열아홉에 일본군에게 징집되는 순이를 구하는 운명에 처하는 인물이다. 미술학도였던 일본인 장교 가즈오는 전쟁에 자원입대했으며 후에 일본의 잔혹성과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고뇌하며 순이를 사랑하게 되는 인물이다.
1931년 가을 부터, 백두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그 세 사람, 징집에 처한 순이와 순이를 구하려는 용이과 일본군 가즈오의 이야기이다. 가즈오는 명령을 받고 호랑이 마을로 부대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잔인한 일본군에 속한 인물이지만 조국의 번영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순수한 생각으로 군입대한 청년이다.
가즈오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보면, 순수한 의지를 가진 미술학도이자 군인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좋은 성품의 인물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는 나 자신이 잠깐씩 혐오스럽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호랑이 마을에서 순이를 만나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가즈오는 마을의 유일한 미혼인 순이가 징집대상에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순이를 구할 방법에 고민한다.
용이가 아버지를 따라 호랑이 마을까지 다다르게 된 이유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물고 간 백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이다. 용이와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육발이라는 호랑이를 잡아 주면서 그 마을에 머물 수 있게 되었는데 어느 날에 용이가 총을 움막에 두고 순이와 있는 동안 마을의 아이들이 용이의 엽총을 들고 호랑이를 잡겠다고 산으로 가서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용이는 그 일로 쫓겨나 7년을 사라졌다가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용이는 순이가 징집되어 일본군 막사에 잡혀 있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순이를 구하는 일에 목숨을 건다. 가즈오와 용이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체 순이를 구하면서 더 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혼란에 빠져 있으면서 가장 명료한 현실을 보는 인물, 가장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은 가즈오이다. 일본군에 의해 처참하게 찢긴 할머니들이 모두 사라져 가길 기다리는 일본 속에 가즈오라는 인물이 있다.
어쩌다 그런 인물도 있겠지 생각하며 책을 읽어 가지만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를 삭이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마음, 사랑하는 마음,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이 책은 제삼자의 시점으로, 가끔 등장하는 제비가 내려다보는 세상의 이야기로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징집되어 끌려가 고초를 겪는 순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너머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