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넌 언제든 집에 돌아올 수 있어, 얘야."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설령 네가 개자식과 결혼한다 해도, 넌 언제든 그 녀석을 떠나 집으로 올 수 있어." P.170
내 아버지도 비슷한 말씀을 내게 건넨 적이 있었다. 미국 생활이 길어져 향수병이 생기고 짓눌리는 생활에 지쳐 마음이 무너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국에 볼 일도 있었고 가족을 만난 지 오래되어 그리움에 목이 마르던 때였다.
나는 아버지의 눈빛만 봐도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셨을지 가슴이 시리도록 선명하게 느끼는 딸이었다.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내가 힘들어하는 걸 나보다 더 빨리 알아차리는 분이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믿어 주는 분이었다. 내가 결정하는 일에 대해 한 번도 두 번 이상 안된다거나 다시 묻는 일이 없으셨다.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못하는 구세대의 어른이었다. 내가 해외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끔 뵙다 보니 약한 마음을 감추고 무거운 갑옷을 두르고 강인함을 보이는 아버지가 보였다. 언제나 아버지는 굳건함을, 내 아버지의 자리에서 한 치도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어 하셨다.
어느 해에 미국에서 들어왔을 때 조용히 둘만 남은 공간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힘들면 들어와도 된다. 아버지가 있잖니? 힘들면 돌아와."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느라 온몸에 힘을 주고 앉아 죄송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렌클은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말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이 가족 내에서 나의 자리가 영원할 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 이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이 아버지의 새끼 새들이 아직 모두 둥지 안에 있던 날들, 원이 온전히 닫혀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군 가정이 완전했던 날들에 대한 아버지 자신의 그리움을 표현한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고향을 떠난 첫 번째 아이였다. P.170
나 역시 부모님의 곁을 떠난 첫 번째 자식이었다. 그것이 부모님을 얼마나 불안하게 하고 서글프게 하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돌아와도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무엇이 더 담겨 있었는지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부모님의 울타리는 내가 떠남으로 인해 완벽함을 잃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허물어져 갔다. 그럼에도 허허벌판에 언제나 내가 떠난 자리를, 나중에는 동생까지 떠난 자리를 지키고 계셨을 그 고독과 허전함과 그리움의 날들을 전혀 알지 못했음을 지금에야 후회하고 돌이키고 싶어 진다.
이제는 아버지가 떠나고 없는 자리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불안하게 버티고 계신 그 자리에 내가 다시 돌아갈 날이 있을까 싶다. 그런 상실감에도 돌아갈 곳이 있다고 느끼는 건 아버지가 남기신 그 말이 여전히 나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 속에서 가장 뇌리에 남은 문장은 그만 가세요였다. 고통스런 아버지의 마지막에 내가 드리고 싶었던 마음이었고 한 마디였다.
그만 가세요, 나는 생각했다.. 떨리는 날숨과 절박하고 탐욕스러운 다음의 들숨 사이에 매번 공백이 있었다. 그만 가세요. 이번이 마지막 호흡이 되게 하세요. 그만 가세요.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