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는 죽고 싶다기 보단 살고 싶었다. 정말 '잘' 살고 싶었다. 그 때 난 세상에 나가 살아가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잘 살고 싶었지만 희망이 없었다. 침대에서 룸메이트가 등교하고 하교하는 것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누워서도 내 고민은 '내가 왜 이러지? 어떻게 해야 세상에 나갈 수 있지?' 하는 것뿐이었다.
밤에 영화는 희망적인 휴머니즘 영화를 주로 골라봤다. 그러면서 우울과 희망을 블로그에 남기며 기원했다. 언젠가 나도 이 방을 벗어나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세상에 나가 밥 벌이 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내 20대는 절실했던 바람을 이루기 위해 대학이 아닌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처음부터 절에 3년씩이나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단체 생활도 싫어하고 종교도 싫어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떠난 한달간의 인도 봉사활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백일출가를 권했다. 내가 생각이 많다고들 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공양간에 가서 뜨거운 불 앞에서 하루종일 노동하고, 매일 절을 하다 보면 생각이 없어질 거라 말했다.
그래서 혹시 내 인생의 치트키가 되려나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백일출가에 입재했었다. 그러던 내가 진심이 된 건, 첫째 날 법륜스님 법문을 글로 본 후였다.
백일 안에 자기를 내려놓는 맛을 보면삶에 희망과 자신이 생기고 어디를 가서살아도 무슨 일을 해도마음에 걸림이 없어집니다.일단 자기 마음에 걸림이 사라지면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장부가 됩니다.
그렇다. 나는 내가 그렇게 기원하고 꿈꿔오던 사람을 '장부'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진심으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장부가 된다면 또 그게 가능하다면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 세상에서 나아갈 수 있겠구나. 그렇게 내 수행이 시작됐다.
길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인 지금, 나는 장부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마음을 살피다 보면 내려놓아지는 걸 몇 번 경험했고 그때마다 나는 내 인생의 희망을 발견한 환희를 느꼈다.
그렇지만 금방 마음은 또 어리석어진다. 어느 정도 혼자 서는 법을 배운 건 사실이다. 대학 새내기 때는 부모님 곁에서만 숨을 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나 홀로 서울 살이도 즐겁게 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에 소중한 것들이 많아져서 고향보다 서울이 더 좋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이놈의 애정결핍은 계속해서 날 찾아온다. 죽지도 않고 또 온다. 이게 내 마음의 습관인 거겠지. 나는 이 애정결핍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영영 없애버릴 수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상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지금 내 마음은 거지의 마음이다. 자꾸 애정을 바라고 관심을 구걸한다. 이걸 연세대 언론홍보학과 김주환 교수는 '인정중독'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나는 지금 도파민에 중독된 사람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거나 칭찬을 받을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도파민은 중독성이 있다. 마치 마약에 중독되면 마약을 한시라도 놓을 수 없듯이 내가 지금 딱 그런 상태라는 거다. 계속 새로고침 하면서 좋아요가 늘어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내 모습이 여느 중독자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김주환 교수에 따르면 편도체가 활성화될수록 정서를 안정시키는 전두엽의 기능은 떨어진다. 그리고 반대로 전두엽이 발달할수록 공포를 느끼게 하는 편도체는 비활성화된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중독에 매몰되지 않고, 전두엽을 계발하는 일이겠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이해했는데 그걸 어떻게 적용시키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다만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인정중독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은 한 가지 알고 있다. 벌떡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해버리는 것이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 속에 빠지는 건 우울과 불안과 무기력에 더 몰입하는 꼴이 된다. 오늘 나는 정오까지 누워서 괴로워하다가 벌떡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샌드위치
방울토마토를 차가운 물에 씻고, 달걀을 굽고, 빵에 소스를 바르면서 법륜스님의 '외로움'에 관한 법문을 들었다. 이내 날 괴롭게 하던 상념들이 옅어졌다. 그런데 웃긴 건, 이제 식탁에 앉아 샌드위치를 입에 넣는 순간부터는 또 우울이 다시 찾아온다. 이 녀석은 조금만 틈이 있으면 나를 파고든다. 배가 통통 부르자 소파에 누워서 그냥 자고만 싶어 진다. 그렇지만 나는 이럴 때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어떨 때는 현관문턱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턱으로 느껴진다. 한 발 내디뎌 이것만 지나면 바깥바람을 얼굴에 쐬며 기분이 상쾌해지는데 집에 있을 때면 이상하게도 저 턱을 넘는 게 너무나 힘들게 느껴진다. 오늘 같이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흩어졌던 내 우울과 내 애정결핍을 느낀 바가 있기 때문에,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수 없이 했기 때문에 나를 믿고 집 밖을 어렵지 않게 나섰다.
지금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며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다. 벗어날 수 있는 애정결핍이라 줘서 고맙다. 그 정도여 줘서 고맙다. 어쩌면 나의 결핍은 앞으로도 완전하게 나를 떠나가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마음이든 마찬가지로 이 녀석을 자꾸 밀어내고 미워하면 답답해지는 건 섭리인 것 같다. 더 많은 샌드위치들을 내 삶에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