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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Mar 26. 2024

애정결핍엔 샌드위치 1

구걸하는 마음을 아는가? 자꾸 마음속 갈고리가 뭔가를 움켜쥐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답답한 느낌을 나는 그렇게 부른다. 뭘 갈구하느냐 하면 ㅡ말하기 조금 부끄러운데ㅡ 바로 사람들의 관심이다.


어째 요즘 글을 연재하면서 답답한 이 느낌이 더 심해졌다. 몇 명이나 내 글을 읽었고, 몇 명이나 '좋아요'를 눌렀는지 시시각각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잠도 설치면서 말이다. 정말 심각하다.


의사한테 털어놓으니 경조증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의사들은 너무 진단을 빠르게 내린다ㅠ) 다행인 건 스스로 한번 조절해 보고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내가 지금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하려면 스스로 갈구하는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한다. 지금 나는 좀 안정이 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 화 주제는 바로 이 마음이다. 쉽게 말하면 '애정결핍.' 사실 이 마음은 내게 익숙하다. 기억에 길이 남아있는 괴로운 순간들엔 항상 이 마음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주로 대인기피 증상을 가져왔다.


꾸준히 약을 먹고 상담도 받아서 지금은 대인기피가 거의 없다. 그런 내가 지금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애매한 사이의 대학 동기들이다. 친했던 동기들은 조금 힘들긴 하지만 만나서 편안하게 사는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아예 안 친한 애들도 아니고, 조금은 대화도 하고 어울리기도 했던 친구들을 이제 와서 만나는 게 여전히 버겁다. 얼마 전에 동기였던 언니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나는 장례식장엔 가지 못했다. 곧 모일 열댓 명의 친구 중에 단 두 명만이 내게 안전하다고 느껴져서 그랬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미 중, 고등학교 때 극심한 불안을 겪고 있었는데 병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거나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사람에게 내 모든 불안을 기댔다.


첫 번째 남자친구였던 H에겐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고 3, 그 바쁜 시절에 나는 그 아이에게 엄마도 줄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을 요구했다. 그때도 내 마음은 지금 마음처럼 늘 뭔가를 갈구하는 괴로운 상태였다. 착한 H에게 나는 미저리 같은 여친이었다. 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해주지 않냐고, 울면서 따지고 또 따졌다. 당연히 수능 끝나고 나는 차였다.


사랑에 실패하고 착했던 전 남친을 잊지 못한 상태로 대학교에 합격했다. 내 모교의 첫인상은 황량하고 차가웠다. 수시 전형으로 붙어서 겨울에 처음 학교에서 동기들과 모였는데, 그때 먹은 학관 콩나물국은 너무 차가웠다. 캠퍼스의 나무들도 옷을 벗고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중 내 마음이 가장 쓸쓸하고 차가웠다. 그때만 해도 나는 사람들이 먼저 내게 호의를 비춰야 안심하고 친해질 수 있는 아이였는데 사람들이 그다지 내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처럼 나도 짜게 식었던 겨울이었다.


OT를 하고 MT를 가서는 좀 나아졌느냐.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혼자서는 도무지 긴장을 풀 줄 몰랐다. 검은 뿔테를 끼고 잔뜩 긴장해서 얼어 있는 내가 완전 대중의 무시 속에 방치됐느냐, 그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몇 명의 선배들은 나를 귀엽게 봐주고 별명도 지어줬다. 애칭으로 불리면서 사르르 과에 잘 녹아들었느냐, 역시 아니었다. 따로 밥을 사주겠다고 불러낸 선배와 밥을 먹으면서 나는 거의 한 마디도 못했다. 동기들과 술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도 도망치고만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잘 보이고 싶고,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필요 이상으로 긴장해서 모든 자리가 벅찼던 것 같다.


잔뜩 쫄아붙었지만 마음 한편엔 관심이 받고 싶었던 나는 '소심한 관종'이었다. 몸과 마음이 내 욕심대로 안 움직이자 나는 동기들을 겁내기 시작했다. 나는 쿨하고 재밌고 밝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과 입이 움직였다.


동기와 마주쳐 안부를 물을 때는 등 뒤로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 동기들과 밥을 먹다가 너무 긴장해서 시뻘건 국에 숟가락을 빠뜨려 옆 친구 옷에 빨간 자국을 남겼을 때는 거의 공포를 느꼈다. 나중에는 인사를 하면서도 말을 더듬었다.


관심에 대한 지나친 욕심, 그로 인한 긴장, 거기에 적절한 치료가 병행되지 않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기숙사 방에 나 스스로를 숨기는 것밖에 없었다.


수업에 나가지 않아 교수님이 나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F가 담긴 성적표가 고향 집으로 날아가자 아빠가 기함을 하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매일 영화로 도피하며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면 침대에 누워 잠으로 현실을 도피했다. 한참 놀아야 할 20대 초반이 내겐 출구 없는 터널처럼 시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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