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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Mar 22. 2024

30대에 얻은 두발자유

어릴 때 나는 꿈이 무지막지하게 컸다. 민사고를 가서 아이비리그로 유학 가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민사고 준비반이 있는 평촌 학원을 다녔다. 중1 때는 매일 새벽 1시에 잠에 들었다. 학교에 가서는 학원 숙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분명히 내가 가겠다고 설정한 목표였지만 자꾸 그만두고 싶어졌다. 이상하게 노을이 주황빛으로 베란다를 타고 거실에 들어오면 나는 울적해졌다. 이유도 없이. 그래서 학원에 가기가 싫었다.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안 좋은 시간에 하필 학원 차를 타야 했다.


그땐, 정확하게 내 감정이나 생각을 읽을 줄 몰랐고 그래서 엄마한테는 그냥 학원 가기 싫다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 엄마는 그때 고향에서 경기도 낯선 곳으로 이사와 많이 힘들던 차였다. 없는 돈을 긁어서 나 하나 잘되라고 먹을 것도 안 먹고 학원에 보내줬던 시절이었다. IMF로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는 부도 직전이었고 부모님이 느끼는 불안감은 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른들 눈에 나는 호강에 받친 애로 보였을 것 같다. 매일 학원 가기 싫다고 징징대던 나는 결국 엄마에게 대판 맞았다. 학원 책 몇 권이 찢어지며 내 머리 위로 내던져졌고, 안 아플 만큼 목이 졸렸다. 불안정한 엄마는 종종 화풀이로 나를 때리곤 했지만 그날은 참 크게 판이 벌어졌었다.


그때 당시에 나는 오로지 민사고 목표로 공부에만 몰두하는 학원 친구들을 보며 나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했다. 각 학교 전교 1등이 모인 우리 반 아이들은 '공부가 제일 재밌어요' 외치며 그 많은 숙제를 다 해왔었고, 토플 점수가 벌써 만점에 가까웠다. 그 속에서 나는 말수를 잃어갔다. 학교에서는 반장을 맡아하고 활발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이였는데 유독 학원에서는 숨소리 하나 내뱉는 게 어려웠다.


아마 그때부터 생긴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은 '나는 하나를 꾸준히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엄마가 내게 반복해서 질책할 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목표를 세우고 좀 어려우면 도중에 그걸 포기한다는 요지였다. 어떻게 보면 엄마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민사고에 가고 싶다고 해놓고 그것보단 낮은 특목고에 들어갔고 서울대에 가고 싶다고 해놓고 연세대에 입학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가 도중에 포기하는 악바리 없는 인간인 줄 알고 살아왔다.


최근에 내 정신과 의사가 내가 엄마에게 많이 의존한다고 지적해 줬다. 그리고 이젠 의존을 끊어야 할 때라고도 조언했다. 안 그래도 나도 그런 것 같다고 느끼던 찰나라서 참 타이밍이 좋은 조언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내가 숏컷으로 자르거나 앞머리를 만들면 화를 내곤 했다. 엄마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내 앞머리를 자를 때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변명을 하곤 한다. 그걸 알아차린 후에 나는 모든 선택을 온전히 내가 하겠다 마음먹었다.



앞머리 자르는 게 이리 비장할 일인가. 그렇지만 내가 10년 전에 숏컷으로 머리를 자를 때 느꼈던 해방감을 내 손으로 앞머리 자르며 또 느꼈다. 나는 이제 남의 말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 자신을 보니 내겐 두 가지 부딪치는 가치관이 있었다. 하나는 부와 명예를 더 쌓아 남보다 더 잘난 내가 되는 것, 또 하나는 왠지 세속적인 기준이 부질없어 보인다는 가치관이 그것들이다. 그래서 내 어릴 때가 이해됐다. 물론 공부가 힘드니 포기하려는 마음에 도피한 것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부와 명예만을 위해 내 인생을 바치기엔 다른 경쟁자들만큼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거다. 서로 부딪치는 가치관을 두 손에 다 잡고 있으니 자꾸 주위가 분산되고 인생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요즘 나는 나이가 들었는지 부와 명예가 뭐가 중요한가 싶다. 물론 대학 동기들과 비교될 때는 불쑥 '아 내 가오...' 하긴 한다. 자존심 하나 때문에 공부를 해 온 내게 각종 타이틀이 달달해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걸 얻기 위해 쏟아야 하는 노력을 이젠 그냥 하기 싫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다 털고 기타나 배우고 노래나 부르면서 훌훌 자유롭게 살고 싶다.


아마 그 시작점은 내 동호회가 아니었을까. 동호회를 통해 실력은 부족하지만 내가 책 읽고 글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뭔가 내 생에 처음으로 발견한 생산적인 즐거움이랄까. 그게 시작이 돼서 나는 요새 관심 있는 분야가 생겼고 그걸 더 공부해 보고 싶어서 좀 상기되어 있다.


어디선가 본 글인데 내 인생을 오로지 내 관점으로 보지 못하고 남의 관점으로 재단당할 때 심리 장애가 발생한다고 한다. 아직도 아마 독립해야 할 구석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 독립에도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내 머리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갈 길도 내가 선택하겠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 든 부모님이 내 옆에서 독립을 응원해 준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자유롭게 살라고 말해준다. 세월은 참 많은 걸 바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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