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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Mar 27. 2024

화내는 엄마 사랑하기 1

나는 생애 전반에 걸쳐 엄마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건 아마 내가 이미 어느 정도는 엄마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어릴 때, 유치원을 다닐 때쯤 꿈에 엄마가 두 명으로 나왔다. 하나는 예전에 나를 이뻐하기만 하던 엄마, 그리고 하나는 당시 내게 화를 많이 내던 엄마. 나는 이전의 다정한 엄마만이 남기를 꿈속에서 간절히 바랐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 아래서 성장하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버지에게 무섭게 화를 내놓고 어두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너무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던 엄마를 나는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허벅지에 피멍이 여러 곳 들게 나를 때려놓고 상처를 보며 미안해하는 엄마를 나는 미워하면서 사랑했다. 나는 엄마가 불쌍했다.


엄마는 유년기 시절 내 동력이었다.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이 어려워 실컷 공부를 하지 못했던 엄마가 안쓰러웠다. 친척들에게 무시당했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끓어올랐다. 내가 성공해서 우리 엄마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공부를 잘해서 엄마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엄마가 정말 미웠다. 자기 화를 내게 푸는 것이 억울했다. 내 일기장엔 부모님을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꼭 잘난 어른으로 성장해서 복수하리라, 이를 갈곤 했다. 물론 내가 좀 단순한 건지 다음 날이 되면 결심은 물거품이 됐다. 아침도 안 먹고 엄마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학교에 가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잠에 들었지만, 아침만 되면 그리고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화냈다가 또 용서했다가를 반복하며 자랐다.


여느 때처럼 집이 시끄러운 날이었다. 아마도 내 성적에 집착하던 엄마가 시험 기간인데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고 나를 혼냈던 것 같다. 큰 소리로 내게 각종 비방을 했다.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참고 있지만은 않았다. 똑같이 큰 소리로 대들었다. 감정이 서로 격해지다 참을 수가 없어서 집을 뛰쳐나갔다. 도망쳐 나온다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나는 제일 높은 층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고 싶어 진다. 나는 엄마의 가장 약한 부분이 나라는 걸 알았다. 내가 죽으면 엄마가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가겠지, 복수심이 들끓었다. 난간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아래를 쳐다봤다. 무서웠다. 그리고 불현듯 너무 억울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내가 죽어야 하지? 왜 아까운 내 인생을 끝내야 하지? 머리가 차가워졌다.


차가워진 머리가 단 하나의 진실을 발견해 냈다. '나는 끝내 가족을 철저히 미워하지 못한다.' 아마 눈물이 터졌던 것 같다. 나는 이유 없이 나를 공격하는 내 가족이 미웠지만 동시에 나는 가족을 완전히 미워하진 못했다. 그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있는 그대로 가족을 받아들이는 것. 내 가족은 내 어떤 노력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죽자니 나 자신이 아까워서 싫었다. 그러니 그대로의 가족을 받아들이고 나만이라도 가족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침착해졌다.


그 이후로도 엄마를 고치려는 내 시도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애써 미워하려는 노력은 포기했던 것 같다. 그저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다시 괜찮아지면 또 괜찮은 대로 지냈다. 그렇지만 내 안에 화내는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와 닮아갈까 봐 무서워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나는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오랜 내 비밀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전화 예절을 실습해 보자며 나보고 대표로 집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하셨다. 유선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우리 엄마가 내게 소리를 지르는 걸 반 아이들이 다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벨이 한 번 울리자마자 끊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신 것 같다고.


엄마에게 악을 지르며 큰 나는 점점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일부도 비밀이 되었다. 밖에서 나는 착하고 성격 좋은 아이가 되어 있었고, 종종 내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언제 이 아이들이 나를 전부 알아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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