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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Mar 28. 2024

화내는 엄마 사랑하기 2

엄마를 닮기 싫었고 때론 엄마가 미웠다. 동시에 나는 엄마 없이 세상을 살아가지도 못했다. 대학생 때 나는 갓 태어난 동물 새끼처럼 연약했다. 모든 내 어려움이 엄마와 연관되어 있었다. 날 극복하고 싶어서 하게 된 백일출가 면접에서 스님이 내게 물었다. '부모님 사랑해요?' 그때, 나는 울었던 것 같다.





절에 가자마자 만 배를 해야 했다. 3일 동안 나눠서 만 배를 하지 못하면 아예 입재를 할 수 없다. 나는 몸 쓰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그때는 인생의 돌파구가 절실했다. 어쩔 수 없이 처음 해보는 절을 해야만 했다.


절을 하다 보면 아무 일도 없는데 미친 듯이 화가 나기도 한다. 다리는 계단을 내려가지 못할 만큼 아파오고 절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아침 공양 시간에 스님께서 백일출가생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셨는데, 절을 하며 일어나는 그게 바로 내 업식이라고 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일어나는 것이 마음 습관인 것이다.


내 경우엔 평소에 이렇게 많은 화를 갖고 사는지 몰랐을 정도로 계속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그러다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도 화가 많은데 어떻게 살았을까.


미칠 것처럼 화가 난 상태에서도 엄마는 나를 크게 다치게 하진 않았다. 칼을 들었지만 찌르지 않았고, 목을 졸랐지만 숨을 못 쉴 정도는 아니었다. 화가 나서 미친 상태에서도 딸이라고 외상까진 입히진 않았구나.


물론 폭력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 폭력과 폭언은 피해자에게 깊고 오래가는 상처를 주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처럼 이미 상처를 입은 사람에겐 상처를 잘 소독하고 꿰매고 다시 걷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그 방법이 엄마를 그만 원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미워하는 건 엄마를 닮은 나 자신을 미워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백일동안 나는 부모님과 나를 사랑하기 위해 절을 했다. 절을 하면 내 마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볼 수 있다. 끊임없이 남과 부딪치며 움직이는 내 마음을 보니 엄마가 이해가 됐다. 이렇게 화나고 억울하고 슬프고 질투하느라 마음이 지옥 같은데 어떻게 우리 엄마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울면서도 끼니를 챙기셨을까. 그게 엄마의 사랑이고 책임감이구나.


그리고 내가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화가 나자 엄마의 그때 그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됐다. 살이 많아 다치지 않을 부분을 정신 없는 와중에도 정확히 골라 때리셨구나...(다시 말하지만 안 때리는 게 가장 좋다. 안 때렸으면 내가 다리 아프게 절을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았을텐데...) 처음 해보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비극 속에서 다행을 찾는 비범한 능력이 생겼다.


절을 하는 이유는 내 생각을 내려놓기 위함이다. '꼭 ~해야 한다'란 절대적, 당위적 신념을 갖고 세상을 살면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할 일이 많아진다. 세상엔 당위가 없기 때문이다. 난 절을 하며 '엄마는 절대 나를 때려선 안 된다.'는 생각을 좀 내려놓은 것 같다. 화가 나서 그랬구나, 하고 아프지만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고 방식이 생겼다.(윤리적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부모님의 거센 반대와 눈물을 뚫고 백일출가 이후에도 3년가량을 더 행자로 남아있었다. 총 4년 정도 흘러 집에 돌아오니 신기하게도 부모님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바꾸고자 했을 때는 바뀌지 않던 분들이 아마도 딸을 절에 뺏긴(부모님 입장에서 말이다) 후에 느끼신 바가 많았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좀 짓궂고 철없지만, 내가 절에 가서 부모님이 가슴 아파하신 게 조금은 통쾌하다. 아직 내 마음에 맺힌 게 남아있나 보다.


엄마 미안




엄마는 언젠가부터 치료를 받고 계셨다. 우울증, 화병, ADHD 등등 뭐가 많았다. 내가 어리긴 했지만 엄마가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우리를 키우고 계신지 마음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엄마도 자기가 왜 힘든지 몰랐다고 한다.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도 그걸 몰라주면 얼마나 외로울까. 엄마는 나를 키우는 내내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맺힌 게 좀 내려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엄마는 내게 넘칠 만큼 사과를 많이 하셨고 지금도 많이 하고 계신다. 이제는 그만 죄책감을 가지시면 좋겠는데도 여전히 엄마는 날 낳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신다.


물론 나는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생명이 여러 형태로 태어나는데 그중에 해탈이 가능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을 엄청난 복이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게 좋다. 그것도 우울이나 불안이 없는 나보다는 그게 있어서 이렇게 생겨먹은 내가 좋다.


지금 여기가 좋으면 과거는 자연스레 좋은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이 좋으면 미래도 좋을 확률이 더 많다. 지금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만든다. 나는 엄마를 닮아서 화를 잘 내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괴물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화를 내고서 머리가 식으면 바로 사과를 한다. 가장 좋은 경지는 화도 안 내는 거겠지만 아직은 멀었다. 화 내고 짜증 내고 부모님이 싸우면 불안해하고 우울해하고. 여전히 반복이지만, 크게 보면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나는 엄마를, 그리고 나 자신을 오늘도 부단히 사랑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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