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때 내 표정이 어떤지 내 눈모양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얼굴 표정은 그 사람의 마음상태를 알려주는 것이니 기분에 따라 다르다는 것만 알고 있다.
속마음이표정으로드러나지 않는 사람과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다.순간의기분이 얼굴표정으로읽히니손해 보는느낌도 있다. 특히 서비스직에서 일하며 포커페이스가 약하다는 건 불리한 사실이다. 솔직한 게 좋다고 불편한 마음까지드러내다 불편한 상황을 맞이하면그 손해는내 몫이니까 말이다.
솔직한 표정과 솔직한 감정인 내가 매장에서 일하며 서비스직에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매일 친절한 가면을 써야 하는 서비스직인데 속마음과 다른 가면을 써야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최대한 불편한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 얼굴 표정을 차분하게 유지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루틴을 지키며 잘 먹고 잘 자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따씨와 일하면서 편안해진 마음은 해맑음과 먹구름을 넘나들며 다중인격을 불러온다. 차분한 모습에서 시작되는젠틀함에 장난기와 바보 같은 몸짓까지 더해지면 익살스러운 가면까지만들어진다.
안 하던 운동을 하다 다리가 뭉쳤다는 아따씨가 출근하여 나를 경계하듯 던지는 한 마디.
"나 다리 아파요. 운동하다 뭉쳤는데내 옆에 오지 마세요."
"뭐라고요?"
멀리서 씩씩하게 걸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 자신의 다리를 보호하고 몸을 움츠리듯 내게 말한다.
"과장님! 그렇게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지 말고 살짝만 감고 다가오세요. 무섭단 말이에요."
"놀란 마음이 얼굴로 표현되어 눈이 크게 떠지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
"아이쿠야. 호랑이가 나한테 오는 것 같다고요. 과장님 눈을 안 보고 말해야지. 아무튼 나 다리 아프니까 이 선 넘어오지 마세요. 과장님은 요 안에서만 계세요."
시선을 아래로 두고 친절하게 내 자리를 정해 주니 그 선을 넘어 아따씨의 뭉친 다리를 두드려 보았다. 아프다는 곡소리를 하는 걸 보니 단단히 뭉친 게 틀림없었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밀대 같은 안마기를 가져와 안마를 권했다. 의심하듯 받아 든 안마기로 만두피를밀듯 다리를 밀어주니시원하다는 곡소리를 낸다. 다리의 시원함을 느끼며 한결 편안해진 아따씨가 말했다.
"악귀 눈에서 달려라 하니의 나애리 눈(달려라 하니 만화에 나오는 조연)이 되셨군요."
"악귀에서 사람으로 한 단계 올라갔군요. 그런데 내 눈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안광이란 게 있습니다. 과장님은 눈빛이 강해요. 진짜 화를 낼 때는 악귀눈이 나온단 말입니다. 눈을 좀 살짝 뜨세요."
"그게 어떻게 되나요? 내 표정도 조절이 힘든데 눈빛까지 조절하라고요?"
"사슴 같은 눈이 됐다가 호랑이 같은 눈도 되는데 나한텐 다가올 땐 악귀눈이라고요."
이곳에서 일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안광이 강하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물론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면 내가 화내는 모습이 어떨지는 짐작이 간다. 대쪽 같은 아버지의 얼굴표정이 아직도 머릿속에 있으니 그 모습이라면 아따씨의 말이 공감된다.
평소에도 호랑이 같다던 말에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시선을 아래로 두고 코믹을 섞어 생활하고 있는데 눈빛은 감출 수 없나 보다. 표정이야 묵묵하게 있으면 되지만 눈빛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하면서 선글라스를 쓸 수도 없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나오는 눈빛을 막을 수 없으니정직하고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는 수밖에 없다. 호랑이와 악귀, 만화 속 나애리의 눈빛까지 모든 것을아우르는 내 눈빛을 사랑하고 다듬어가는 수밖에.
안마로 다리가 가뿐해 보이는 아따씨에게 먹잇감을 노리며 사냥하는 자세의 호랑이처럼 다가갔다. 그런 기운을 느끼고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는 아따씨를 보며 내가 한마디 한다.
"왜 이리도 깜짝깜짝 놀라십니까?당신은기가 너무 약하십니다."
"당신이 세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아따씨의 상기된 얼굴에 공포와 황당함이 섞여 고성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우찌 할꼬. 부드러운 표정도 힘든데 부드러운 눈빛까지 장착해야 하다니 세상에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얼굴표정을 가리는 가면은 몰라도 눈빛을 가려주는 선글라스는 쓸 수 없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면도 눈은 뚫려있는데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