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초콜릿, 달콤한 코코아, 바삭한 크래커에 하얗고 달콤한 생크림을 좋아했다. 기운이 없으면 초콜릿을 먹었고 입이 심심하면 크림빵에 코코아까지 마시면서 당을 충전했다. 많이 먹어 죄책감이 들 때만 빼고는 평생을 함께 해 온 친한 친구 같은 존재다. 그런데 살을 빼야 하니 멀어져야 한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달달한 간식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평생 못 먹는 것도 아닌데 시작부터 서운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혈당신경식 식단에 맛있어하며 만족해 하고 있다. 정신없는 아침은 배가 고파도 참을 수 있지만 점심, 특히 저녁은 힘들다. 하지만 저녁을 배부르게 먹어 주면서 간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먹어서 살이 빠질까란 걱정에 한 번이라도 더 움직였다. 다리 들어 올리기도 20개만 할 거 한 세트 더 하고 쉬고, 근력 기구도 한 번 더 하고 내려왔다. 소화도 잘 되어 아침이 되면 배가 고파왔다.
처음엔 아침을 먹지 말까란 생각으로 공복을 즐기려 했다. 하지만 조금씩 자주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삶은 계란을 먹었다. 아침에 삶은 계란을 먹어도 배는 고프다. 오히려 배고픔을 느껴야 위가 줄어들면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점심과 저녁까지 소식을 유지하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자신 없다.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해야 했던 30대에 16일 동안 강제 금식을 한 적이 있었다. 첫날부터 셋째 날까지 배가 고팠지만 다음날부터는 배고프지 않았다. 먹을 수 없단 걸 알기에 먹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16일 만에 먹었던 건 수술을 앞두고 장을 비울 때 마시는 액체였는데 나에겐 반가운 음식이었다. 맛이 없어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40대 들어서는 장염으로 일주일을 입원하고 맹장수술로 일주일을 입원한 뒤로는 굶는 것 자체가 힘들다. 못 먹어서 침대에 늘어져 있으면 왜 사나 싶다. 핸드폰 잡을 힘도 없고 화장실 갈 힘도 없이 종일 침대만 누워 있다 보면 화가 난다. 몰래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 먹으면 되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나에게는 무리다. 금식시간이 지나고 받아먹는 병원밥들은 나에게 꿀맛이었다. 짜면 못 먹어도 싱거우면 잘 먹는 나에게 병원밥은 맛있지는 않아도 훌륭했다.
그런 나에게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난 적이 있었다. 병원에 갔더니 또 굶으라셨다. 힘 없이 받아 든 처방전에 약을 짓고 작은아들을 위한 도시락을 샀다. 혹시나 해서 2개를 샀는데 집에 와서 작은아들의 먹는 모습에 너무 먹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남은 도시락 한 개를 열어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괜찮은 거다. 다음 날부터 쌩쌩해진 나를 보며 역시 먹어서 밀어 내려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굶지 않으리라.
달달한 간식을 끊고 탄수화물을 조심하며 혈당을 신경 쓰는 식단으로 배부르게 먹으니 일을 할 때도 수월했다.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몸도 가벼워졌고 배가 편안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표가 나지 않았지만 바지를 입으면 허리가 편안했다. 속도 편하고 바지도 편해지니 컨디션도 좋아졌다. 몸에서 표시가 나면서 저녁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점심과 저녁사이에 습관처럼 먹던 과자도 저녁을 배부르게 먹으면서 자제할 수 있었다. 배고프지 않은데 입이 심심해서 먹었던 간식습관이었구나 싶다. 이런 간식습관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 주니 간식을 먹지 않게 됐고 저녁에 먹는 음식도 맛있고 배불렀다. 그러면서도 살이 빠지는 게 신기했다.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치팅데이에 대해 생각했다. 치팅(cheat)의 속이다는 뜻과 데이(day)가 만나니 '속이는 날'이라 말할 수 있다. 다이어트 식단에 익숙해진 몸을 속이는 날이라니. 하기야 6일째가 되도록 맛있게 먹고 있는 식단이지만 평생 해 나가려면 조절이 필요했다. 이런 식단만으로는 질릴 수 있어 평생 먹기 힘들다. 중간에 식단을 바꾸면서 골고루 먹는 습관도 길러야 하고 일반식도 먹어 주는 관리도 필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끼정도는 내가 좋아했던 음식을 먹으면서 몸을 속일 필요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끼만 먹고 싶던 음식을 먹는 게 몸을 속이는 게 될 수 있다니 치팅데이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치팅데이라고 하루종일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는다면 다이어트를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치팅데이에 매 끼니를 일반식으로 조금씩만 먹는다면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종일 먹어댄다면 다이어트는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애써 관리해 왔던 건강한 식습관을 하루 만에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거니까. 그래서 치팅데이라고 정한 날 한 끼만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한 끼 음식을 정하고 일주일 동안 건강식을 지켜갈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그날이 되면 먹을 수 있으니 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이어트 식단만을 해야 한다는 고집도 버려지고 일반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으니 꼭 필요한 날이다. 치팅데이 한 끼 음식은 건강한 음식과 먹고 싶은 음식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치트끼니인 것이다.
내가 정한 치팅데이 한 끼 음식인치팅끼니는 8일째 저녁. 사실 먹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치팅데이의 필요성에 억지로 정했다. 그날은 토요일이고 아들과 같이 먹을 수 있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메뉴인 치킨으로 정하고 그동안 모아 왔던 쿠폰으로 치킨 두 마리를 주문하기로 했다. 제일 생각나는 건 치킨밖에 없다. 달달한 과자는 먹고 나면 허무해지지만 바삭한 치킨은 고소함과 든든함이 오래간다. 역시 배부른 게 좋다. 대신 양념보다 후라이드로 정하고 한 마리를 다 먹는 불상사는 없도록 조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