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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May 09. 2024

나쁘지 않았던 손님과의 갈등

손님과는 차분한 기싸움이 필요하다.

손님과의 갈등 중에 속이 시원해지며 기분 좋게 해결한 갈등도 있었다.

그 상황 역시 제본 때문에 생겼다. 제본에 관한 일은 세세하게 살펴야 하고 책이나 글에 민감한 분들의 소중한 자료이기에 예민하다. 그래서 피곤한 일이다. 신경 쓰이는 일인 만큼 응대하는 것도 두 배로 힘들다.


그날 아침에도 어느 50~60대 중년의 여성고객님의 제본의뢰로 시작되었다. 6권의 출력물을 링제본으로 해달라는 요구셨다. 당장 해달라는 요청이셨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제본이라는 것만 하면 몰라도 문구점에는 다른 자잘한 일들이 많다. 접수를 받고 최대한 신속하게 해 드리겠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완성 후 연락을 드려야 한다. 손님도 마음이 바쁘셨는지 제본의 위치를 헷갈려하셨다. 제본방향의 중요성을 아는 나는 한 권씩 방향을 물었고 그대로 제본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두 시간 뒤 완성된 제본을 손님에게 전하고 한 시간 뒤 연락이 받았다.

"제본 방향이 이상해요.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데. 그쪽에서 잘못한 거 아니에요?"

"예? 제본은 한 권씩 주시는 데로 들어갔을 텐데요."

"아닌데 그쪽에서 잘 못했어요. 3권은 맞는데 3권은 잘못됐어. 이거 어쩔 거야."


잘못된 제본 방향으로 화가 나신 손님은 매장으로 계속 전화하셨고 계속 매장의 잘못만 강조하신 채 화를 내셨다.

"손님! 죄송하지만 가지고 오시면 다시 해 드릴게요."

제본이 잘못됐다는 전화에 다시 해 드리는 방법을 선택했고 방문한 손님은 계속해서 불만을 말씀하셨다.


"나는 똑바로 줬는데 왜 내가 잘못 줬다고 하는 거야. 여기서 잘 못 했잖아."

"손님! 계속해서 말씀드리는데 잘 주셨는지 잘 못 주셨는지는 확인할 수 없어요. 그리고 손님이 잘 못 주셨는지 저희가 잘 못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내가 잘 못 줬다는 거야? 내가 이 매장에서 제본을 몇 번이나 했는데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그래서 다시 해 드리잖아요. 누가 손님이 잘 못 주셨다고 합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처음부터 죄송하다고 말했어야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몇 번을 더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려야 화가 풀리실까요?"


그러면서 그 손님은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조용한 분위기에 갑작스러운 손님의 행동은 하던 일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손님의 눈빛에 지지 않으려 나 또한 손님의 눈동자를 계속 쳐다봤다. 차분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손님의 눈동자가 살짝 움찔했고 다른 곳을 쳐다본 순간을 포착했다.

그 순간 '됐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 풀 꺾이며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의 손님에게 말했다.

"저 자료가 중요한 자료인가 봐요. 영어로 되어 있던데 뭘 배우세요?"

"아! 이 나이에 영어 좀 배워보려고 학교를 다니는데 그 자료예요."

"어머! 그러시구나. 멋지시네요. 영어를 배우시다니. 영어 배워서 어디 여행 가시려고요?"

라며 화젯거리를 돌렸다. 기싸움에서 이긴 여유로 난리를 쳤던 여성 손님과 차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무작정 화를 내서 미안해요. 말씀대로 내가 잘 못 줬을 수도 있는데 마음이 바빠서 그만 화를 냈네요."

"아니에요. 그럴 수 있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본이라는 게요 좀 그래요. 앞으로는 여유롭게 맡겨주세요. 제본 방향도 표시해 주시고요."


호랑이 같던 손님을 순한 고양이로 만들어 보내드렸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난 갈등상황은 많지 않았지만 저 일은 나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내 마음의 여유로움과 에너지로 갈등을 이겨낼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으니까. 그리고 내 내면에 자리한 큰 에너지를 느끼며 자심감까지 얻었다.


직원과의 갈등, 나와의 갈등, 손님과의 갈등 모두가 쉽지 않다. 매번 씩씩하게 대처하며 상황을 종료시키지만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갈등 속에 지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냉정해지고 담백해지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차분해 지려한다. 남아 있는 감정들은 긍정의 주문으로 희석시키는 발전을 하고 있지기억에 남아 있는 건 어쩔 없다.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나를 발전시키는 힌트가 된다고 생각한다. 매번 빨리하고 급하게 해 드리려다 일을 그르친 경우가 많았으니 천천히 가는 법을 익혀야 했다. 손님일지라도 늘 친절할 수 없고 긍정을 행할 수 없다. 그러다 번아웃이 오면 멘탈 털리는 것은 내가 되니까. 너무 열심히보다 현명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며 나를 보호해 가며 일하려 한다. 이런저런 일로 깨질 때로 깨져버린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다. 그 속에서 미움받을 용기, 싫은 소리 할 용기, 거절할 용기도 배우고 있다.




대응방식


결이 맞지 않아

화살 같은 입장만 쏘아댄다

당황한 나를 방어하다

쌓이는 나의 마음판


몇 번을 맞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지는 상황들

또 하나의 분한 경험이

내 속에 기록된다


분함을 무기로 각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기록한 대처법

뽑아내고 다듬으니

부드러워진 대응방식


몇 번의 상황들이 와도

내 속에 기록된 것들로 대처하니

부드러운 능숙미가 입혀졌다


쏘아대는 말투에도

쪼아 보는 눈빛에도

평정심과 부드러움으로 대하니

어느새 내가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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