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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May 02. 2024

4. 우리는 감정노동자. 손님과의 갈등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도 한 때지만 여전히 힘들다.

돈을 벌어야 하는 40대 중반. 아들을 키우고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오래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년 고비가 오며 지쳐갔지만 ‘아들’이라는 단어로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매장에 익숙해지며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여기서 일하다 보니 좋은 일도 생긴 거지.’

‘원래 힘든 것들을 이겨내야 좋은 일도 있는 거랬어.’

‘앞으로 최소 5년은 버텨내야 해.’ 


내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도 긍정의 말로 봉합해 가며 일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내게 필요한 일이니 긍정적인 정신무장은 필수였다.      


매장 안에서는 관리자이지만 매장 안에 일하는 우리 모두는 감정노동자다. 매일 손님을 응대하고 필요한 일들을 해내며 밖으로 쾌활한 가면을 써야 하는 감정노동자. 손님과의 크고 작은 갈등은 감정노동자의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매번 쉽지 않다. 친절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불합리한 상황을 맞다 보면 공평하지 않은 감정에 마음이 상한다. 늘 친절할 수 있을까? 그건 상대에 따라 다르다. 손님이라도 무조건적인 친절을 강요한다면 무표정한 직원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같이 욕을 하며 싸웠다간 불리한 건 직원이니까. 얼굴에 감정을 지우고 최대한 상황을 넘기며 분한 감정을 눌러야 하는 것은 감정노동자인 직원이다. 모든 갈등에는 이유가 있고 서로의 입장이 있기에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는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서로의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다면 극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갈등 상황이 끝나도 남아 있는 죄책감과 상해버린 마음은 잠을 설치게 한다.


오랫동안 거래해 왔던 업체가 있었다. 그중에 사무실에 소장님이셨던 분은 가끔씩 오셔서 물건을 주문하셨고 개인 폰으로도 주문해 주셨다. 여자분이셨기에 편하고 반갑게 대했었다. 손님에 따라 낯을 가리는 나였지만 몇 년간 거래해 왔던 분이셨기에 나름의 정성을 다했다.


“윤 과장! A4용지 묶어서 철하는 거. 그 검은색 있잖아요.”

“아! 흑표지요?”

“어 그거 하고 내가 잘 쓰는 물티슈 묶어진 거 하고.”

“아 네. 6개짜리 묶음으로 된 물티슈지요.”

“서류함 3개짜리 그 빨간색으로 된 거 있던데 그거 하고.”

"아 3단 자리 플라스틱 서류함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거 있지?’로도 알아듣는 나를 직원들은 신기해한다. 나도 신기하다.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나라도 팔 수 있지 않은가. 촉을 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 제본 관련 일로 실수가 있었다. 나는 제본에 관해서는 기본적인 접수만 할 뿐 잘 모른다. 전화는 받더라도 자세한 사항은 담당자에게 넘긴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온 것이다.


"윤 과장! 내가 카톡으로 사진 한 장 보냈는데 한 번 봐요."

"예"

"뭐가 잘 못 됐죠? 뭐가 잘 못된 것 같나요?"

"예?"

"아니 그것도 안 보여? 책 등이 잘 못 됐잖아."

그러면서 일장연설을 하시는 거다. 5~6분간 들려오는 따발총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져 갔고 당황해하면서도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잠시만요. 소장님. 이건 사장님과 통화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내용을 잘 모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정신을 차린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제본을 했냐고. 내가 제본을 해서 실수가 생겼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매장의 바쁜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따발총 소리에 내 감정은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다 30분 뒤 전화를 주셨다.

"배송기사 있죠. 지금 당장 내 사무실로 와서 책을 가지고 가라고 해요.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내 책상에 올려놔요."

너무나 공격적이고 지시적인 말투다. 매장의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니 군말 없이 배송기사에게 전화했다. 잘못 제본된 책을 받아오라고.


배송을 마치고 돌아온 배송기사의 얼굴은 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와~ 미치는 줄 알았어요."

"왜요?"

"사무실에 가서 책을 받아오려는데 대뜸 저를 보더니 야단을 치시더라고요. 책이 왜 이 모양으로 됐는지 난리를 치시던데. 30분간 가만히 듣고 왔어요."

"뭐라고요? 다른 배송도 있었을 텐데 그걸 듣고 있었어요?"

"마음은 급한데 중간에 끊기가 애매해서요. 와~ 근데 우리 매장의 모든 직원을 공격하던데요. 그게 그럴 일이에요?"

"뭐 제본에 관해서는 잘못된 게 맞으니까요. 뭐라고 하시길래 30분이나 듣고 있었어요?"

"매장이 예전 같지 않느니 일을 이 꼬락서니로 한다느니. 제일 충격적인 건 뭔지 아세요. 매장운영을 그렇게 하니까 거래처가 없어지는 거지 하는 거예요."

"매장 거래처가 얼마나 있는지 그분이 어떻게 아시길래."

"몰라요. 거래처가 많이 떨어져 나갔죠? 그딴 식으로 하니 떨어져 나가지. 그러면서 미수금이 얼마 있냐고. 나 여기 거래 못하겠다고 말씀하시던데요."

"그래요?"

"그리고 당장 월요일 아침에 제본을 배송해 달라고 하세요."


그 외 모든 인신공격과 온갖 소리를 다 듣고 온 배송직원에게 고생했다는 말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귀에 맴도는 소리 '거래처 많이 떨어져 나갔죠? 그러니까 그렇지."

을의 입장에서 무조건 죄송하다고 했어야 했나? 나의 대응이 부족했나?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나는 불공평한 감정. 일적으로 잘못된 것은 당연히 들을 수 있다. 그로 인해 피해를 드린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인신공격은 아니지 않은가.


매장에 오시면 다른 일은 제쳐 두고서라도 응대해 드렸고 배송이 밀려도 꼭 챙겨드린 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동안 해 드렸던 응대는 기본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온갖 소리를 듣고도 화를 내지 않은 배송기사에게 괜스레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런 고초는 우리만이 아니라 사장님께도 전달된 모양이었다.


나는 분하고 억울했다. 고객과의 소통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과 아닌 말들이 있다. 하나의 실수에 예전의 모든 정성은 날아갔지만 말들은 남는다. 들어도 괜찮은 말들이 있고 아닌 말들이 있는데 매장에서 일하는  나에게 상처인 말들이 박힌 것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예전과 다른 분위기 속에서 매장의 매출은 예전과 같지 않다. 시대적인 분위기가 달라졌고 상황도 다르다지만 매출이 떨어진다는 것 자체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거래처 많이 떨어져 나갔죠?"란 말씀은 우리에겐 깊은 상처였다.


내가 했던 존중과 배려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그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되었다. 그분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우리의 실수니 참아보자. 그러나 거래처가 떨어져 나갔다는 말배송직원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게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었다.


거래를 끊을 거라는 말씀도 며칠 뒤 걸려온 주문전화에 진심이 아님을 알았다. 소장님이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서 받은 전화로 소장님도 이 부분에 대한 미안해함을 가지고 있구나란 짐작만 할 뿐이었다. 당당했다면 소장님이 전화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폭풍우 같은 갈등은 지나갔지만 마음의 상처는 남아있다.


오래 일하다 보면 개인 전화로 주문전화를 주신다. 저녁 늦게 전화하시거나 휴일에도 문자를 주시면 나를 찾아주신다는 생각에 뿌듯해지기도 한다. 귀찮다는 생각보다 얼마나 급하면 휴일에도 전화해서 부탁을 하실까란 생각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장인 줄 알고 계신 분들이 많다. 처음엔 아니라 했다가 이제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네~”라고 웃고 넘긴다.       


인정욕구가 많은 나로서는 이곳에서 나를 찾아주시고 알아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이런 점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지만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매번 같은 상황은 아니어도 감정을 건드리는 갈등은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래! 그동안 조용하다 했어. 때가 됐구먼. 이때가 지나면 한동안은 조용하겠지."

그러면서 지나치고 잊어버리려 한다. 일을 하면서 번개같이 오는 상황에 긍정적 다짐만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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