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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Apr 18. 2024

일에 욕심이 있다니

일에도 선이 필요하다.

문구점에는 소매 손님만 오시지 않는다. 학교나 관공서에서 오시는 선생님들과 도매처 주무관님들도 계신다. 그분들과 거래하다 보면 이름대신 불리는 호칭인 직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업체에서 찾기도 편하고 업체에 나를 소개하기도 편하다. 매장에서 이름이나 선생님으로 불리던 호칭에서 과장님이라는 호칭은 이상했다. 하지만 과장으로서 역할을 해내라고 준 옷이니 내 몸이 맞춰야 했다. 직급에 상관없이 해 오던 일에 책임감까지 더해지니 신경 쓸 일들이 많았다. 허술해 보여도 일에서 만큼은 꼼꼼해지는 나에게 이곳의 일은 호기심이자 해결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관리자는 일을 잘해야 한다. 기본적인 능력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킨다는 것은 우스워보일 수 있다. 어려운 일은 전면에 나서서 해결하고 보이지 않는 경우까지 생각하며 준비한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정리해 두고 계획을 짜서 생각한 뒤에 행동해야 한다. 먼저 사장님께 보고하며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중간이 힘든 건데 의도치 않게 중간역할을 해했다.

‘나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너무 버거운데.’

‘뭐야 또?’     


직원이 바뀔 때는 크고 작은 업무들을 알려 줘야 한다. 도 버거운데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며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하면서 생기는 불편한 상황들도 마찬가지다. 직원들과의 감정문제, 손님과의 응대에서 오는 감정노동, 사장님과의 불통으로 갈등상황은 피할 수 없다. 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언제든 올 수 있는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몰라서 편하게 있을 수 없다. 낯을 가리며 인지된 계획과 익숙한 상황을 좋아하는 나에게 일터는 전쟁터라 말할 수 있다.         


예전에 일했던 남자직원이 있었다. 주말근무에 같이 일하다가 여유롭게 일해도 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동동거리고 있으면

“과장님! 천천히 좀 하세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가만히 있질 못하세요. 이거 내가 할 테니까 의자에 앉아있으세요.”

“아! 이것만 하고 앉을게요.”

“과장님! 예전의 우리 엄마를 보는 것 같아요. 그냥 좀 앉아요.”     


엄마를 보는 것 같다는 말에 우리 아들의 외침이 생각났다.

“좀 쉬라구요. 그만 좀 하고.”

우리 아들과 똑같이 말하는 직원의 말에 의자에 앉으며 생각했다. 내가 쓸데없이 나서고 있는 것인가? 빨리 일하고 같이 일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동동거린 건데 앉아서 생각하고 보니 나도 참 징그러웠다.

엄마를 보는 것 같다니. 직원의 진심 어린 말에 마음이 꽂히면서 고마워졌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들의 말은 잘 듣는 편이다. 어느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해주고 알아주는 이들이 아닌가. 마음속 깊이 알아주지 않아도 툭툭 뱉어내는 아들만의 위로가 있다. 그런 아들처럼 매장에서도 나를 알아주는 직원들이 있었다. 자기들이 봐도 일을 많이 하는 내가 안쓰러웠던 것 같다. 여러 상황들을 아는 그들과 가족같이 지내다 보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들이 생겼다. 큰아들 같은 직원과의 동행은 1년이 지나 마무리되었지만 사적으로는 이어지고 있다.      


매장에서 친근하게 지내던 직원들과의 이별은 서운함 반, 걱정 반이다. 헤어져서 서운하고 일이 많아져서 걱정이다. 사람과의 헤어짐은 한 번씩은 있기에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적당한 선을 지키며 지낸다. 사람과 멀어져도 감정적으로 타격받지 않는 선 말이다.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선을 지키고 있는 셈이니 현명하다 생각한다. 감정적인 선보다 이성적인 선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내 마음을 보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사이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으며 나를 보호했지만 일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일을 많이 하려 했고 잘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욕심낼 걸 욕심내야지 미련하게 일 욕심을 내다니. 어느 순간 알아버린 일 욕심한숨이 났다. 오래가기 위한 일을 하려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짧게 생각할 게 아니라 길게 봐야 했다.


무엇이든 균형을 맞추고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한데 내게 주어진 책임감에 일욕심을 부렸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으니 할 말이 없다. 일에 욕심을 낸다는 사실은 나를 멈추게 했다. 문득 일이 많아 마음이 급해지며  바빠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잠깐을 외칠 수 있었다. 먼저 생각하고 천천히 하나씩 하자로 바뀔 수 있었다. 일만 하면 몰랐을 사실을 동료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의 나쁜 점을 알고 바꾸어야 내 삶도 바뀐다는 생각에 주변에 쓴소리에도 고마움을 느꼈다. 왠지 나를 알아주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하나씩 천천히 나는 그렇게 가도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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