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만나면 우리 헤어지지 말자
하루 출퇴근 시간만 왕복 2시간 30분!
아침 6시에 일어나 6시 40분에 출발하여 회사에 도착하면 8시 였다.
그때만 해도 사무실 청소해 주시는 분이 따로 계시지 않아서 직원들 책상 정리와 모닝커피 대령까지 막내인 내가 도맡아야 했다.
나름 준공무원이라는 자부심도 반복되는 잡다한 일에 차츰 수그러들어 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게다가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린 지 1년이 지나니 연애도 흥미를 잃어가고, 앞으로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때마침 그 시기가 한창 타로가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이었고, 나는 연애운을 보기 위해 회사 동료 언니와 타로 카페를 방문했다.
목적은 상담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카드의 매력에 내 마음을 빼앗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루한 일상에서 신선한 자극이 필요했던 시기에 운명이라 느낄 정도의 타로 카드를 만난 것이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퇴근 후에는 카페에서 카드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다.
나는 사장님이 상담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열정을 키워나갔다.
고단했던 막내로서의 회사 생활과 남자친구를 막연히 기다리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진정한 친구는
보수적인 가족도,
한참 연애에 푹 빠져있던 절친도,
무관심한 회사 직원도 아닌 타로뿐이었다.
이쯤 되니 마음이 흔들렸다. 타로 상담을 본업으로 전환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렘도 잠시, 가족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곱지 못했다.
특히나 조선시대에 태어나셨다면 한 획을 그으셨을 보수적인 아버지는 난리를 치셨다.
때로는 자식이 1+1=3이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 주시면 좋으련만, 내 아버지 눈에 흙이 들어간다 해도 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나는 부모님의 의사를 어길 수 없었고, 타로의 길을 택하지 못했다.
조용한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고 하는 일이 얼마나 오래갈 것이며, 행복할까 싶어서였다.
이때 참 많이도 울었다.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겨우 회사 생활하다가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더군다나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길을 택하지 못한 나 자신도 미웠고, 이런 상황 자체에 회의도 느꼈다.
결국 우리 집은 "부모를 이기는 자식은 없다"라는 교훈을 남기고 내 친구 타로와는 그렇게 정리했다.
나는 타로와 작별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단순히 카드의 알록달록한 색채와 실감 나는 그림의 감동뿐만은 아니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길에서 방향을 찾는 여정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우선은 미안해...
타로야, 나는 이번에 나 자신과 너를 지키지 못했어.
결국은 못난 주인이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인연이라면 그때는 서로를 꼭 지켜주기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