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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Feb 05. 2024

남편과의 첫 도서관 동행기

 무슨 출입증 같은 거 없어도 되나?

 


 "나 ㅇㅇ도서관 갈려고 하는데... 책도 반납해야 하고... 집에서 일할 거야?"

남편이 재택 하는 금요일. 김치말이 국수로 아점을 먹은 후 정오가 지난 무렵 티브이를 보고 앉아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이 없다.

  "카페 갈 거야? 저번처럼?"

  나는 다시 물었다.

  남편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도서관 가지 뭐..."

  나는 짐짓 잘못 들은 척 되물었다.

  "도서관? 나랑 같이?"

  "어... 준비해..."

  의외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도서관은 오로지 나만의 영역이었다. 데려다주거나 데리러 온 경우는 있어도 도서관 안에는 한 번도 들인? 적이 없었다. 나도 원치 않았고 남편도 원치 않았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은 세 곳이야. 굴다리 너머 이웃 시의 ㅇㅇ도서관, 복지센터 4층에 있는 ㅇㅇ 작은 도서관, 그리고 ㅇㅇ 중앙도서관... 오늘 내가 가야 하는 도서관은 ㅇㅇ 중앙 도서관이야. 가장 크고 책도 많고 시설도 가장 좋아... ㅇㅇ 작은 도서관은 가깝고  건물은 산뜻한데 너무 작아서 책도 별로 없고 조금만 늦어도 원하는 자리에 앉지 못하지... 복지센터와 근무시간을 맞추는 건지 운영시간도 오후  6시까지고... 이웃 시 도서관도 그리 크지 않아서 내가 찾는 책이 없을 때가 많아..."

  조금은 흥분했는지 나는 가방을 챙기고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으면서 남편이 듣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종알거렸다.


  "도서관에서 노트북은 쓸 수 있나?"

  남편이 노트북을 챙기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이 사람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남편이 또 물었다.

  "무슨 출입증 같은 거 없어도 되나?"

  "으이구... 이 남편아... 도서관 출입증 따로 있는 줄 아셨어요? 책 대출할 때만 필요하지..."

  하긴... 학교 도서관 외에 학생 아닌 신분으로 공공도서관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면 그렇게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나는 남편을 이해해 주기로 했다.


  "매점 같은 건 있나?"

  차를 운전하며 남편이 물었다.

  "없어. 도서관 별관에 빵과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는 있는데... 커피는 1500원... 근데 빵 종류가 몇 개 없어.. 별로더라고...  매점은 없고 싸 온 걸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휴게 공간은 있지... 온수도 나오고 전자레인지도 있고... 도시락 싸 오는 사람들을 위한 냉장고도 있어... 김밥이랑 컵라면 사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쓸데없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서 세워 봐. 저기 김밥이 맛있더라고... 주택가인데 중년 부부가 운영하고 있어. 바로 싸서 주는데 되게 맛있어..."

  도서관을 100미터쯤 남겨 놓고 내가 말했다. 남편은 차를 세웠고 나는 뛰어나가 김밥을 사 왔다. 또 조금 가서는

   "저기 편의점 앞에 세워... 컵라면 두 개 사면 되지?"




  도서관 규모에 비해 좁은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갓길에 겨우 주차를 시켜 놓고 도서관에 들어섰다. 물론 내가 앞장섰다. 나는 도서관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침없이, 보무도 당당하게 2층의 문헌정보자료실로 곧장 올라갔다.  이 도서관은 문헌정보자료실이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데스크를 중심으로 해서 양 쪽으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에 남편을 초대한 것 같이 약간 흥분되고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벌써 이용객들이 붐볐다.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는 오른쪽 서가 옆에 겨우 남편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는 남편의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대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처음 접해본 환경에 잘 적응할지 궁금해하면서 나는 가지고 온 독서대에 책을 펼쳐 놓고 독서를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급하게 자료실을 나가면서 저음으로 낮추어 통화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일하는 중에 통화를 좀 하는 편인데 그게 좀 불편하겠구나 싶었다.


  "출출하네..."


  남편의 톡이 왔다. 오후 5시가 가까웠고  우리가 도서관에 들어온 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나는 김밥과 컵라면과 커피가 든 에코백들 들고 남편의 자리로 갔다. 6인용 탁자에 앉아 종이신문을 펼쳐보는 노년의 이용객, 둥근 기둥을 등받이로 만든 소파형 의자에 파묻혀 조는 듯이 책을 허술하게 들고 앉아 있는 중년의 여자 이용객  너머 꼿꼿하게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는 젊은 이용객 옆에 구부정하게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편의 등이 보였다. 언제부터일까... 타인들 속에서 발견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안스러워 보이기 시작한 때는...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어깨를 건드리자 돌아보는 남편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지하 1층 휴게실로 내려갔다. 혼자 왔을 때는 늘 구석진 창가 쪽에 앉았었는데 남편과 함께 중간에 놓인 둥근 탁자에 앉았다. 개봉한 컵라면을 들고 온수가 나오는 정수기 쪽으로 가는 나의 뒤를 역시 똑같은 컵라면을 든 남편이 따라왔다. 나는 능숙하게 컵라면에 온수를 잘 받았는데 처음인 남편은 컵라면에 온수를 받으려다가 뜨거운 물을 손등으로 흘렸다.


  "어때? 카페에서 할 때랑 비교해서...."

  김밥을 우물거리며 내가 물었다.

  "카페보다 낫네... "

  남편도 김밥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카페보다 좀 불편하지 않아? 전화도 맘대로 받을 수 없고.... "

  "카페처럼 사람들 막 지나다니는 것보단 나아..."

  "의왼데...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김밥과 컵라면을 깨끗이 먹고 커피도 타서 마시고 다시 올라가 각자의 자리로 가서 두 시간 정도를 더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산행을 하고 함께 여행은 해도 함께 도서관을 이용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도서관은 나 혼자만 가던, 가끔은 남편을 속이고 가던 나만의 아지트였다. 오늘 처음 이용해 본 반응으로 보아 남편은 나와의 도서관 동행에 주저 없이 흔쾌히 따라나설 것 같다.

 이 사실이 한편으론 기쁜데 또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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