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대설과 한파주의보 안전안내문자가 날아드는 겨울의 한복판. 자정이 가까워오도록 귀가하지 않은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의 목소리에는 술기운이 감지되고 술집임이 짐작되는 왁자지껄하고 경쾌한 소음이 들려왔다.
날도 추운데... 엄청 추운데... 얼른 끝내고 들어와... 내일도 출근해야잖아...라는 나의 말에 아들은 알았다고 알았다고만 대답하고 서둘러 끊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방문 소리만 들렸으니 씻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든 거였다.
새벽 여섯 시. 아들이 일어나야 할 시간인데 조용했다.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일어나야 되는데 아들... 여섯 시 넘었는데... 아직도 완전히 잠에 취한 아들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달래듯이 말했다.
어... 일어날 거야...
아들은 눈도 뜨지 않고 웅얼거리며 귀찮다는 듯 돌아누웠다.
일어나...
나는 엉덩이를 몇 번 두드려 주고 방문을 열어 놓고 방을 나왔다. 깊이 곤히 잠든 사람을 깨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도. 그건 전쟁터에서 돌아와 완전 무장해제한 군인에게 다시 무기를 들이미는 일인 것만 같다. 이제 그만 일어나 다시 나가서 싸우라고.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한 방을 쓰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시험기간이면 항상 새벽 댓바람에 일어나시는 할머니에게 꼭 깨워달라고 부탁했었다. 할머니는 가끔은 깨워 줬지만 자주 깨워주지 않았다. 깨워주지 않은 날이면 나는 왜 깨워주지 않았냐고 시험 망치게 생겼다고 할머니에게 짜증을 부렸었다. 할머니도 공부한답시고 밤잠을 설치다가 늦게서야 잠든 손녀를 아침도 시작되지 않은 새벽에 깨우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곤하게 잠든 아이를 일부러 흔들어 깨우기보다 조금 더 자게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 할머니에겐 그깟 시험 점수보다 손녀의 곤한 잠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주는 게 소중했던 것이리라.
그건 좀 애틋하고 짠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그 대설과 한파의 새벽 어스름을 내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10분쯤 지난 후 다시 들어가 봤다. 여전히 자고 있었다.
아들... 오늘 좀 늦게 출근해도 돼?
아니
그럼 일어나야 되는데
일어날 거야
나 이제 안 깨운다...
알았어 일어날 거야... 아우 출근하기 싫어...
아들이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하며 작게 몸부림을 쳤다.. 30분이 되어가는데 아들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다시 한번 더 깨워볼까... 아들의 방 가까이 가 봤다. 웅얼웅얼 통화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들의 방문 앞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잠시 후 세면장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7시 좀 넘어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며 아우 추워...라고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멀찍이 서 있던 나에게도 새벽의 차고 날 선 공기가 달려들었다.
30분쯤 지각하겠구나... 상사에게 한소리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사에게 듣는 그 질책의 한소리가 아들의 마음에 너무 깊은 상처로 남지 않기를 나는 다시 밖을 내다보며 바랐다. 언제부터인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다시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기가 이쩐지 미안해져서 나는 오래도록 눈 내리는 밖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
재직중이었던 작년이나 재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대설과 한파로 전철이 자주 연착되는 날이 며칠 계속되던 어느 하루였다. 그날도 출근을 좀 더 일찍 서둘렀다. 조금씩 연착되는 전철 안에서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많이 연착될 것 같으면 회사 사무실에 전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1 개 정거장에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두 정거장을 남겨놓고 전철이 거의 움직이지를 않았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고 나는 20분 정도 지각을 했다.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나를 호출했다. 지각한 것에 대한 사유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전철이 연착된 것이 지각의 이유인데 무슨 사유서를 쓰나요?
진짜 전철이 연착돼서 늦었나요?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건가요?
그럼 진작에 전화를 했어야지요 그렇게 늦게 전화하는 건 아니죠... 빨리 전화를 해 줘야 우리도 대비를 할 거 아닌가요?
두 정거장 두고 갑자기 많이 연착이 되었다니까요...
그전에 미리 연락을 했어야죠....
오래전 일이라 대화의 내용을 확실히 되살릴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대화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조장과 낮은 목소리로 티격태격하는데 좀 떨어진 파티션 너머에서 그걸 듣고 있던 팀장이 나를 불렀다. 물른 나는 팀장을 의식하고 있었다.
ㅇㅇ씨, 요즘 같은 날엔 좀 넉넉하게 출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일단 늦겠다 싶으면 바로 전화를 주는 게 맞고요...ㅇㅇ씨가 너무 늦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우리도 일이 조금 어긋났어요... 아무튼 이번엔 사유서 받지 않을게요. 앞으로 좀 주의해 주세요....
이 역시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취지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이 일로 나는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20분 지각에 모멸감까지 느꼈던 것이다. 내 잘못에 대한 질책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과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유서를 쓰지 않은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일은 사유서를 굳이 받아야 되는 잘못까지는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전화를 너무 늦게 주는 바람에 우리가 좀 당황스러웠어요. 다음부터는 그럴 조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찍 일찍 전화를 주세요....
그 정도의 질책만으로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질책으로 받아들이 일 수 있지 않았을까. 크게 상처받지 않고 더구나 모멸감 같은 더러운 기분 따위 느끼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거기엔 단순히 내가 전화를 늦게 한 것과 20분 지각이라는 이유 외에 평소 나에 대한 감정이 섞이지 않았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 일을 겪은 전인지 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와 비슷한 잘못을 한 다른 동료에게는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은 질책을 하지는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사유서의 사, 자도 못들있는데요? 하면서 해맑게 웃던 동료 앞에서 나의 모멸감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니까 나의 짐작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는 거다. 평소 나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그날 팀장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공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킨 것이 아닌가. 아무튼 내 잘못에 대한 합당하고 정당한 질책은 아니었다고 나는 판단했고,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넘어 모멸감까지 느꼈던 것이다.
나는 지각을 자주 하는 직원도 아니었고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직원도 아니었다. 어쩌면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는 소위 '아부 근성'이 전무했던 것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나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가까운 동료 직원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때면 '그러니까 ㅇ ㅇ 씨도 이거, 이거 좀 가끔 하고 그래...' 하면서 두 손을 비비는 시늉을 해 보이기도 했었으니까.
그날 밤 아들은 좀 일찍 귀가했다. 내가 신경 써서 끓여 놓은 황탯국을 중년의 아저씨처럼 크어.... 크어.... 소리까지 내면서 퍼먹는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오늘 지각했다고 야단 많이 들었어?
아들은 아니,라고 가볍게 대답했다. 표정이 밝았다. 새우젓 넣어 끓인 맛있고 시원한 황탯국 때문인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