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슬픔이란 그저 물기 흥건하고 번들대고 질척거리는 슬픔 뿐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과 같다> 글쓰기수업 세 번째 문장이 주어졌다.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 나오는 문장이란다. 이 문장을 가지고 밤 12시 전에 글 한 편을 써서 글쓰기 수업 오픈 채팅방에 올려야 한다.
나는 한강 작가의 소설은 꽤 읽은 것 같은데 시는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나저나 슬픔이라... 그것도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과 같은 슬픔은 어떤 슬픔이며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일단 강사님의 말대로 마음의 서랍을 열어 내가 겪은 모든 슬픔을 찾아 보자.
그런데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은 아무리 내 마음과 기억의 서랍 속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겪은 슬픔이란 그저 흥건하게 고였다가 흘러내려 번들거리고 질척대는 슬픔일 뿐이었다. 아무리 커다란 슬픔이라도 해도 거기에 콧물이 섞이거나 울음이 걸린 목울대에서 꺽꺽대는 소리가 추가됐을 뿐... 그래서 돌아본 나의 슬픔은 물기 흥건하고 질척거릴 뿐만 아니라 시끄럽기까지 한 슬픔이었다. 추억의 이름으로 아련하거나 전생의 기억처럼 낯설어진 평범하고 흔하디 흔한, 그것도 이제는 거의 잊혀진 슬픔일 뿐이었다. 물기없이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은 오랜 세월이 흘러 돌아보면 어떻게 다가올까. 더욱 단단해져 있을까 조금은 금이 가 있을까 조금은 물기가 어려 있을까...
어쨌든 나는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을 찾아야 한다. 아니 찾고 싶어졌다. 간절히... 타인의 슬픔이라도... 그렇다고 전화를 걸어 물어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인류 보편의 가장 슬픈 일이라면 영원한 이별인 '죽음'일 터... 일단 내가 겪은 가까운 죽음을 떠올려 본다.
내가 가장 먼저 겪은 죽음은 고등학교 3학년 봄에 겪은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때 나는 몇 년 만에 부활한 고등학교 축제 연습에 한창이었다. 가장행렬과 교련시범에서의 여자중대장 등 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 맹연습 중이었다. 축제를 하루인가 이틀 앞두고 할머니는 수돗가에서 밭에서 뜯어 온 나물을 씻으시다가 옆으로 조용히 넘어져 그대로 돌아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엄마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슬픔은 무척이나 컸다. 평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던 엄마조차도 기절할 듯이 서럽게 우셨다. 나도 슬프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의 축제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아쉬운 마음과 맞물려 나는 슬픔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한 철없는 손녀였다. 그 후로 할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과 살갑고 다정한 딸이나 손녀가 되어 주지 못했다는 후회로 철철 울었다.
슬픔의 정수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별의 슬픔 아닌가. 물론 나도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었다. 사랑했으나 이별을 해야만 했던 몇몇 만남이 떠오른다. 내가 차버리기도 했고 차이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무척 슬펐다. 술에 취해서 울기도 하고 거리를 걸으면서 울기도 하고 잠을 자다가 울기도 했다. 이 지구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고 가장 슬픈 인간인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냥 슬픔의 과장된 제스처였을 뿐인 것 같다. 이제는 어떤 술자리에서나 안주삼아 그때는 그랬노라고,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떠벌리는 오래된 잡지의 몇 페이지를 차지한 통속적인 이야기로 전락했을 뿐.
아무리 찾으려 해도 나의 마음의 서랍에는 물기없이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이 없다. 신은 인간에게 감내할 수 있을 만한 고통만을 주신다고 했으니, 나는 아마도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을 감내할 그릇이 못되므로 아예 제외시켜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기억의 서랍은 일단 닫아두고...집안을 왔다갔다 히면서 생각에 골몰하다가 즉흥적으로 산에 가기로 한다.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을 찾아서. 며칠전 산행 때 만들어 먹고 남은 재료로 김밥 한 줄을 대충 뚝딱 만들고 사과 반쪽도 슥슥 잘라 락앤락에 담고 보온병에 커피 담고 생수 한 병을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선다. 운전해서 갈까 하다가 원석 같은 슬픔을 찾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 나가서 전철을 타기로 한다. 생각을 하기에 두 발로 걷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20분을 걷고 30분 전철을 타고 도착한 ㅇㅇ산 역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너고 인도를 조금 걷다가 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금방 숨이 차오른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멈추어지지 않는다. 헉 헉.... 단 단 한 물 기 없 이 단 단 한 원 석 같 은 슬 픔 ...
헉 헉.... 칼 로 도 연 마 되 지 않 는 헉...헉... 슬 픔 의 원 석...헉 헉 ... 아 니... 원 석 같 은 슬 픔...
내 지난 생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슬픔은 없다. 그저 물기 흥건해서 번들대고 질척거리는 슬픔의 제스처 뿐...
헉 헉.... 그렇다면... 어떡하지? 어디서 찾지?
헉 헉...
한 시간을 쉼 없이 올라온 후 쉼터에 다다른다. 벤치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배낭을 열고 뜨거운 커피를 꺼내 마신다.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지...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슬픔은 자식이 죽는, 참척의 슬픔이지... 참척의 슬픔... 아...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전도연 주연의 '생일'
전도연은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들이 죽었는데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의 방을 그대로 둔다. 아들의 방을 청소하고 이불을 빨아 뽀송뽀송한 잠자리를 만들어 놓고 옷을 사다 나르고 교복도 손질해서 옷걸이에 단정하게 걸어 그대로 둔다. 현관의 센서등이 켜지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ㅇㅇ니? ㅇㅇ 왔니? 하면서 마치 아들이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맞는다.
어쩌면 그것이... 그 슬픔이 바로 물기 없이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이 아닐까... 믿을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어 눈물 조차도 흐르지 않는... 물기 없이 단단한 슬픔...
마지막에 가서 결국 전도연은 운다. 아들의 영상을 보면서 처절하게 운다. 아니 처절하게 운다, 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통곡한다... 이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그건... 물기없이 단단한 원석과도 같은 슬픔이 신도 어쩌지 못하는 힘에 의해 폭발해버린 듯한 울음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내 아들도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한참 지나서야 겨우 봤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라의 무책임과 방기에 대한 분노가 불덩이처럼 치밀어 올라왔지만 여전히 나의 분노는 행동하지 않는 무력한 분노일 뿐이었고 그 무력한 분노가 부끄러워 더욱 길고 오래 울었던 기억이 있다.
겨우 찾아낸 나는 하산길을 서두른다. 또 무슨 영화가 있었던가...
아.... 안중근 열사를 다룬 영화 '영웅'이 있었지. 거기서 안중근 열사 어머니의 슬픔... 먼 이국의 감옥에서 말도 못할 고초를 겪고 있는 아들의 수의를 지어 보내며 '죽으라... '고 편지 쓴다.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고.... 아직 살아 있는 아들의 수의를 지으며 죽으라.... 하는 어미의 마음을... 일천한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것이야 말로 진짜 물기 없이 단단한 원석의 슬픔이 아닐까....
그것이 내가 산에 오르면서 그리고 하산하면서 찾아낸 '물기 없이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이었다.
나는 겨우 찾아낸 '원석 같은 슬픔'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산을 내려온다. 전철을 타고 영화 '선물'과 '영웅' 유튜브 숏폼을 찾아본다. 평범하고 일천한 나는 전철 안에서 배우 '전도연'과 '나문희'의 연기를 보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다. 전철 안의 몇 몇 사람들이 흘낏거리는 것 같은데도 나는 아랑 곳 하지 않는다.
나의 슬픔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기 흥건한 질척질척한 슬픔... 나는 타인의 원석 같은 슬픔을, 눈물조차도 흐르지 않는 그들의 슬픔을 대신해 울어줄 수 있을 뿐... 나는 죽을 때까지 단단한 원석 같은 슬픔은 절대로 겪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