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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이 쏘아 올린 내 유년의 기억 한 토막

by 찌니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 은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손보미 작가의 문학적 자서전


--- ‘불장난’에는 유년 시절이 경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설명하려면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열한 살이었을 때 (이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실제로 불장난을 했다. 혼자 한 건 아니었다. 음… 누군가 옆에 있었다. 누구였을까? 동생이었거나, 아니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친한 친구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종이에 불을 붙이고 구경하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장난을 대하는 태도가 꽤 진지해졌다. 마음 놓고 불장난을 할 만한 곳을 찾다가 처음으로 옥상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바람을 막고 더 큰 불을 내기 위해 시멘트 벽돌을 찾아와 작은 벽난로를 만들었다. 그 안에 종이와 자잘한 나뭇가지를 집어넣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입으로 후후 불거나 손부채를 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불길이 확, 타올랐고 벽돌 구멍 사이로 칫솟았다. 강력한 불은 잘 꺼지지도 않았다. 나는 밤마다 아침이 빨리 오기를, 그래서 또다시 옥상에 가서 불장난을 하게 되기를 바랐다.


…………


불장난이 막을 내린 건 어느 날 갑자기 옥상에 난입한 경비아저씨 때문이었다. 파란색 경비 옷을 입은 그가 “이놈들!” 하고 소리 질렀고,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문을 통해 냅다 도망쳤다. 미처 끄지 못해 남아 있을 불길, 우당탕탕 빠르게 달려가던 복도, 가쁜 숨과 후들거리는 다리, 집으로 뛰어 들어온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현관문 렌즈로 바깥을 주시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일이 있은 후 불장난을 향한 열망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르라 들었다.



윤대녕(소설가) 심사평


성장소설 형식의 회고담으로 구성된 중편에 가까운 분량의 ‘불장난’은 손보미 소설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내적으로 손상된 어딘가 낯선 존재들’의 고요한 역경을 섬세하고 집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어둡게 차단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특유의 주술적 방식’으로 보여 주는데 이 작품에서는 곧 ‘불장난’이다. 이전의 삶을 전소시키는 방식으로써만 다음 삶의 출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명제는 크게 새로울 게 없으나, 결말 부분에 이르러 주인공이자 화자가 자신이 직접 쓴 글을 즉흥적으로 각색해서 낭독하는 장면은 명백히 통과의례를 의미하는 바, …..








나도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열 살이나 열한 살 무렵 불장난을 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때 엄마는 나만 데리고 외갓집에 갔는지 모르겠다. 세 살 위 언니도 있고 세 살 아래 여동생도 있고 오빠도 둘이나 있었는데.


외갓집은 우리 집에서 멀미를 할 정도로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버스정류장에 내려서도 걷거나 소달구지를 타고 산고개 하나를 넘어야 하는 산골 중에 산골이었다. 몇 달 전에 엄마에게 갔다가 엄마가 그 외갓동네를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엄마를 모시고 그 동네에 갔었다. 지금은 마을의 깊숙이까지 매끈하게 도로가 포장되어 있었고 금방 쓰러질 것 같은 흙벽에 초가지붕이 대부분이었던 내 기억 속의 마을의 집들은 산뜻한 현대식 주택으로 변모해 있었다. 동네를 부드럽게 둘러싸고 있는 산맥만은 변함없이 여전했다.


산골 아이 답지 않게 나는 흰 바탕에 무슨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외가에 간다고 엄마가 신경을 써서 해 입힌 옷이었다. 한여름이었고 나는 높은 대청마루에 다리를 까딱이며 앉아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대청마루에는 외할머니가 팔을 궤고 낮잠에 빠져 있었다. 담이 없는 마당은 넓었고 가끔 동네의 또래 아이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 또한 먼저 말을 걸 만큼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나를 힐끗 올려다보는 기미가 있으면 나는 눈을 내리깔며 도도한 표정으로 그 시선을 외면했고 그 애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그 애들의 뒤통수에 눈길을 주었다. 아이들이 가다가 뒤돌아보면 나는 또 눈을 내리깔았다. 외할머니를 몇 번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외할머니는 눈을 뜨는가 싶더니 이내 또 잠이 들었다. 심심하던 나의 눈에 성냥 한 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절에는 어디에나 성냥이 흔했다. 나는 하릴없이 성냥을 꺼내 불을 켰다가 마당으로 던지는 짓을 했다. 밝은 한여름 한낮의 햇살 속에 그 불꽃은 희미했지만 와르르 탈 때의 그 화약 냄새와 순간적으로 팍 일어나는 불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불이 성냥의 반쯤을 타들어가서 성냥을 잡은 손가락이 뜨거워질 즈음 마당으로 던졌다. 흙마당에 던져진 성냥 토막은 금방 꺼졌다. 마당에 내가 던진 타다 만 성냥개비는 점점 늘어나는데 엄마는 여전히 오지 않고 외할머니는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모르고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힐끗 쳐다만 보고 지나쳐 갔다. 그 짓도 점점 시들해졌고 나는 다시 심심하고 또 심심해졌다.

이 불이 켜진 성냥을 잠든 외할머니의 팔뚝에 한 번 놓아 볼까 하는 심술궂은 생각이 퍼뜩 난 것은 그 심심함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일 것이다. 화들짝 놀라 일어날 외할머니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에 팟, 하고 성냥의 머리에 불이 붙은 다음 가장 높게 가장 뜨겁게 타는 불꽃이 조금 사그라진 후 꺼져가지만 아직도 불이 붙어 있는 성냥개비를 잠자는 외할머니의 팔에 살그머니 얹었다. 외할머니가 겪을 놀람과 뜨거움보다 놀라서 벌떡 일어날 외할머니의 반응만 기대했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을 때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얼마 가지 않아 울음으로 바뀌었다. 외할머니가 벌겋게 화난 얼굴로 야단을 치며 내 등짝을 마구 때렸다. 평소에 화가 난 외할머니의 얼굴을 나는 그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작은 눈이 밑으로 처지고 얼굴이 길고 치아가 한 개도 없어서 합죽한 입은 하훼탈처럼 늘 웃고 있었다. 내가 와앙 울음을 터뜨렸는데도 외할머니는 화를 풀지도 않고 나를 달래지도 않았다. 그만큼 놀라고 화가 났던 것일까.

나는 그 길로 엄마를 부르면서 엄마에게 가겠다고 동네를 걸어 나와 그 고갯길을 향해서 울면서 걸어갔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엄마를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외할머니가 나를 찾아 뒤쫓아 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외할머니나 엄마가 쫓아와서 눈물 콧물로 얼룩진 내 얼굴을 치맛자락으로 닦아주며 데리고 갔을까? 파란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엄마가 저 멀리서 달려오던 모습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에게 물어보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40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다.









소설에는 또 주인공이 그 불장난을 글로 써서 백일장에서 입선한다. 그 후 담임 선생님이 그 입선한 글을 반 아이들 앞에서 낭독해 보라는 대목이 있다. 나에겐 이 비슷한 기억도 있다.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 만난 등치가 크고 검은테 안경을 썼던 담임은 다른 무엇보다 학생들의 일기 쓰기를 강조했다. 매일 종례 시간이면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학생의 옆에 서서 일기를 읽었다. 어떤 학생의 일기는 대충 읽었고 어떤 학생의 일기는 꼼꼼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내 일기는 특히 선생님이 자세히 읽었다. 읽고 난 후에는 늘 일기를 잘 쓴다고 칭찬도 해줬다. 나는 그 칭찬이 좋아 일기검사 시간을 기다렸다. 그 전에 일기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아마도 담임 선생의 추천으로 '일기상'도 받았다.

어느 날은 그 일기를 전체 조회 시간에 앞에 나가서 낭독을 하라고 했다.

나는 조회 시간의 마지막 순서로 호명이 되어 단상에 올라가 내 일기를 전교생 앞에서 읽었다. 내용은 무더운 날씨에 뱀과 거머리가 우글거리는 논밭에서 온종일 일을 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일기장을 옆구리에 끼고 도열한 학생들 사이를 뛰어 나가던 내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전교생 앞에 서는 게 처음이었으니 많이 긴장하고 떨었겠지... 내 목소리는 얼마나 떨려 나왔을까... 그래도 일기인데 좀 창피했을까 아니면 좀 으쓱해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만의 내밀한 비밀 일기가 아니라 효에 관한 보편적인 내용이었으므로 그리 창피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언젠가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서 옛날 얘기를 하다가 내가 일기 낭독한 얘기를 하면서 기억나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 기억을 하는 동창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 후로도 열심히 일기를 썼는데 그 끝이 보람되지 않았다. 어느 날의 일기에 나는 선생님이 어떤 한 여학생을 편애하는 것 같다는 내용을 썼다. 그것도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그 여학생에게만 어떻게 했고 하는 등 좀 구체적으로 썼던 것 같다. 어쩌면 선생님의 관심을 빼앗긴 듯한 질투심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일기를 쓰면서 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이걸 선생님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 일기를 다 읽으신 선생님이 좀 굳은 얼굴로 일기장을 유난히 조용히 내려놓으면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나는 뭔가 잘못한 것 같아서 고개를 숙이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선생님은 나의 뒤통수를 쓸어주며 “선생님 ㅇㅇ 도 좋아해…” 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다음 날의 일기에 나는 나의 오해였던 거 같다는 내용을 썼는데 그 이후로 어쩐지 선생님은 내 일기를 전처럼 꼼꼼히 읽어 주지 않았다. 설렁설렁 대충 읽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그런 변화가 아쉬워 일기를 더 열심히 잘 써서 선생님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졸업할 때까지 나에게 좀 냉랭했던 걸로 기억된다. 상처를 많이 받았던가? 모르겠다.

그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2학기부터는 선생님의 일기쓰기에 대한 애정도 시들해졌고 나 또한 일기쓰기를 게을리 하게 되었다.


그때 그 담임선생이 끝까지 내 일기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고 독려해 줬다면 어땠을까...뭐가 달라졌을까... 인생의 어떤 한 시기에 누군가에게서 들은 단 한 마디의 말에 인생의 방향을 잡은 예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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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소설가) 심사평


대상수장작 ‘불장난’은 부모의 이혼과 재혼, 이사, 전학 등의 혼란을 겪으며 두 어머니 사이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는 소녀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소녀가 접하는 삶의 미묘한 기류와 온도를 지극히 섬세하지만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연히 불장난을 시작한 소녀는 여름 태양의 열기만큼 크레셴도로 치닫는 음악처럼 점점 고조되는 불장난을 멈출 수 없다. 이 불장난의 기억은 소설의 결말에서 사춘기와 어른의 삶을 향한 문을 통과하며 화자로부터 의미 있는 삶의 성찰을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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