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뚝 떨어졌다. 집 안에 있어도 서늘한 공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날씨 때문인지 빨래도 하고 밥도 먹고 집을 나갈 준비를 해 놓고도 밍그적거리다가 소파에 멍하게 누워 있다가 잠깐 졸기도 했다. 배도 고프지 않은데 계란 풀고 파 송송 썰어 넣은 라면도 한 개 끓여 먹고 커피도 타 마시고 오후 3시가 가까워져서야 집을 나섰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이 제법 불었다. 드문드문 낙엽이 떨어지고 옷이 펄럭이고 머리가 휘날려 얼굴 전체가 바람에 노출되었다. 날씨 때문인지 어정쩡한 시간 때문인지 천변 산책로도 텅 비어 있었다. 지쳐서 늘어뜨린 사지처럼 땅을 향해 휘어진 잡초들은 이젠 바람이 불어도 일어서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둔하게 뒤챌 뿐이었다. 늘 걷는 길 늘 보는 풍경인데도 느릿느릿 두리번거리면서 걸었다.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오랜만에 바하만의 시구( 時句)를 떠올렸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매년 가을을 알리는 스산한 바람이 불 때면, 특히 바람 부는 날 집을 나설 때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라면이나 끓여 먹고 짧은 머리카락 잠깐 날리며 기껏해야 집 근처 도서관에나 가면서 마음은 먼 곳을 헤매는 것처럼 정처 없어졌다.
누구든 떠날 때는 / 잉게보르 바흐만
누구든 떠날 때는
한 여름에 모아둔 조개껍질이
가득 담긴 모자를 바다에 던지고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 한다
사랑을 위하여 차린 식탁을
바다에 뒤 업고
잔에 남은 포도주를
바닷속에 따르고
빵을 고기떼들에게 주어야 한다
피 한 방울 뿌려서 바다에 섞고
나이프를 고이 물결에 띄우고
신발을 물속에 가라앉혀야 한다
심장과 달과 십자가와, 그리고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그러나 언제 오는가?
묻지는 마라
'식탁을 털고 나무 끼는 머리를 하고'라는 문장은 31세에 자살한 수필가 전혜린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수록된 '먼 곳에의 그리움'에 있다. 전혜린의 짧은 생과 그녀가 남긴 글은 20대의 나를 사로잡았었다. 물질적인 삶을 살기보다 정신적인 삶을, 그러니까 고독과 자유와 방황과 방랑의 삶을 살다가 일찍 죽어버리자는, 그러니까 짧고 굵게 살자는 치기 어린 열망에 온몸이 달뜨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만의 시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胃)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읍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전혜린은 또 이렇게도 썼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이토록 생을 사랑한다 했으면서 전헤린은 서른한 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생이 너무 어렵고 끔찍해서일까...
며칠 전 저녁 남편과 집에서 가까운 동남아음식전문 식당에 갔었다. 젊은 흑인 남자가 중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옆 의자에는 낡은 배낭이 놓여 있고 좀 추레한 복장이었다. 그의 테이블에는 신선로 같은 그릇이 놓여 있었다. 메뉴판에서 찾아보았더니 톰얌쿵 수프였다. 그의 앞에는 조금씩 덜어 먹으라고 준비된 앞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음식의 흔적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너무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어서 음식을 먹고 있는지 명상을 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는 아주 조금만 떠서 앞접시를 사용하지 않고 입에 넣고는 입을 다물고 천천히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우물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똠얌꿍 쌀국수와 뿌팟퐁 게튀김커리를 게걸스럽게 다 먹고 열대과일음료수까지 빨대로 쪽쪽 다 흡입해 먹을 때까지도 그는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의 옆 테이블에는 우리나라 남녀 커플이 음식을 세 가지나 푸짐하게 시켜 놓고 먹으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가끔 큰 소리로 웃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 다른 마음 다른 언어 속의 그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분명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 목적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위(胃)를 채우고 난 후 휴식과 잠을 위해 찾아드는 곳은 어쩌면 좁고 허름한 고시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젊고 외롭고 고독하고 힘드리라 짐작되는 그의 이국 생활을 내 멋대로 짐작하는 한편 내가 장그르니에의 에세이 '섬'의 한 대목을 떠올린 것은 그가 혼자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먼 이국에서의 고독과 외로움을 잊거나 나누기 위해 무리 짓지 않고 그 스산한 저녁을 그렇게 혼자 아무 말없이 앉아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섬' 같아 보였기 때문일 것이었다.
혼자서 아무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상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 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간직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 젊은 흑인의 자리에 나 자신을 앉혀 보았다. 이왕이면 전혜린이 살았던 잿빛 안개와 축축한 공기 때문에 낭만과 우수가 차 있다는 독일의 도시 슈바빙의 어느 낯설고 허름한 식당에 혼자 앉아 있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