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구분야는 인간공학이다. 학부생 때 작업관리와 인간공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과 인연이 닿은 게 시작이었다. 교수님의 제안으로 학부생 때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실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당시만 해도 나는 산업공학을 주전공에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흘러흘러 인간공학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게 되고 나의 밥벌이로 자리잡게 될 줄이야.
먼저 인간공학이 어떤 분야인지에 대해 생소한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예전에는 인간공학적 의자, 침대같은 광고를 티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인간공학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대표적인 예제 중 하나다.
수십년간 통용된 인간공학의 개념은 ‘작업환경을 인간에 맞춘다(Fitting the Workplace to Human)’이다. 좀처럼 느낌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주변 일터를 살펴보면 사실 많은 경우 ‘인간이 작업환경에 맞추고 있다(Fitting the Human to Workplace).’
자신의 키보다 훨씩 낮은 작업 테이블에서 허리를 구부리며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작업의 환경에 우리의 몸을 끼워맞춰 일을 하게 되면 생기는 상황들이다. 오랫동안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면 작업자들이 손목, 어깨, 허리와 같은 부위들에 통증을 느끼고 심하게는 작업 질환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간공학자들은 높이 조절 및 경사 조절이 가능한 작업 테이블 등을 제시해 작업대가 개개인의 신체 조건에 맞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요새 '사물의 의인화'라는 주제에 꽂힌 나는 이를 인간공학 이론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인간공학의 개념이 더 진화해서 ‘인간화된 작업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고도화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기서 '인간화된 작업환경'이란 작업환경이 물리적으로 인간에게 맞춤형이 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작업환경을 뜻한다.
작업을 할 때 나의 키보다 낮은 테이블의 높이를 단순히 높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의 작업대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고, 작업대는 작업자의 특성을 기억해서 반겨준다.
“오늘은 작업 테이블을 내 허리 춤에 맞추고 5도 정도 살짝 기울여줘. 테이블 색은 녹색이면 좋겠어”.
이러한 피드백에 맞춰 작업 테이블은 즉각적으로 변환되고 작업자와 음성으로 대화도 가능한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본다.
허무맹랑한 소리도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일터는 아니지만 우리의 주거 공간에서다.
현재 엘지나 삼성과 같은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컨셉으로 가전제품과 스마트 홈 제품들을 기획하고 가전박람회와 같은 큰 행사에서 프로토타입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제품군을 그들은 엠비언스(ambience)제품이라고 칭한다. 엠비언스(ambience)라는 단어를 챗 GPT에 물어보니 레스토랑, 카페, 호텔, 이벤트 장소 등에서 음식, 인테리어, 조명 등과 함께 공간의 전반적인 느낌을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단어라고 한다.
즉 은은하게 테크가 우리의 집 안 곳곳에 숨어서 우리를 보조해주는 것이다.
눈 앞에서 보이진 않지만 우리가 집 안의 어느 곳에 있든 조용히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고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쓱 나타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로 이동하면 자연스럽게 불이 켜지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가면 자동적으로 불이 켜지고, 즐겨듣는 라디오 채널을 재생해준다.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러한 스마트홈 제품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결국 우리의 작업장까지 확장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터의 곳곳을 누비고 다닐때 나만의 행동과 특성을 기억하고 컴퓨터가 알아서 내가 원하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사물들과 대화하고, 웃고, 떠들고, 서운하고, 교감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본다.
그러한 시대에 우리는 일하러 가는 즐거움이 높아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