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ual Perversion
27. 성적 도착증 Sexual Perversion
우리는 이상한 경험을 한 후, '그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했다.
쪽지에 언급된, 그들이 말하는 '그분'이라는 존재는 사람일까? 아니면 동물이거나 초자연적인 존재인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고, 우리들은 각자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걸어갔다.
또한 다 같이 배가 고파져서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하지만 그냥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아닌, '그분'이라는 존재가 우리와 가깝게 있기에 무너진 건물 주변에 있는 펜션에서 고기를 먹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주변에 있는 것이 크렉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크렉에서 발견된 쪽지이고, 그 쪽지는 크렉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관련이 있으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무너진 건물 주변에 펜션이 있었고, 우리는 바로 예약했다.
또한 FT, HK, TO, QK도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총 7명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HK의 휴대용 음식들도 함께 먹기로 했다.
QK는 잠깐 못 본 사이에 몸이 좀 더 커졌고, 근육이 많아졌다.
분명 이 근육들을 쓸 곳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TO는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말랐는데, 아무래도 문을 만드는 작업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았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아주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크렉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각자에게 맞추어서 문을 만들어두었다고 했다.
FT는 우리의 감정을 읽어주면서 우리들이 함께할 때 안전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주었다.
우리는 함께 마트에 가서 고기 및 음식들과 반찬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구매했고, 바로 펜션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도 없어야 하는 펜션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누군가를 보자마자 나름 포함한 우리 8명 모두는 각자 환상에 빠지게 되었다.
환상은 주로 성에 관련된 질환들이었다.
노래 잘하고 힘이 센 QK는 관음증과 같이 다른 사람이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몰래 엿보는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QK 본인은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이나 연인이 없어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곱씹게 되었다.
그로 인해 앞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살아야 한다는 불안과 우울이 생기게 되었다.
특전사 출신의 요리사 HK는 마찰 도착증과 같이 자기 성기 또는 신체의 일부를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접촉하는 환상을 보게 되었다.
절대 그럴 일이 없었던 HK는 이 환상을 통해 처음으로 마찰을 통한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되었다.
미래를 보는 출판물 기획 전문가 XZ는 마조히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적 피학증과 같은 환상을 보게 되었다.
신체나 정신적으로 학대를 받을 때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데, XZ 역시 처음 느껴보는 쾌감을, 환상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모든 문을 다루는 TO는 페티시즘이라고도 하는 물품 음란증과 같은 환상을 경험했다.
신체의 일부분이나 어떤 물건을 성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는데, TO의 경우에는 문의 손잡이를 그렇게 인식하게 되었다.
환상을 통해 모든 문에 있는 손잡이가 성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면서, 미묘하고 복잡하지만, 기분이 정말 좋은 느낌을 받았다.
과거를 보는 대기업 직장인 SF는 사디즘이라고 하는 성적 가학증과 같은 환상을 보게 되었다.
성행위를 할 때 타인에게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데, 환상 속에서 자신과 성관계하는 사람에게 학대를 처음 했으나, 그에 따른 쾌감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엄마 같은 FT는 환상을 통해 노출증의 경험을 했다.
자기 성기와 신체를 낯선 사람에게 노출했는데, 그때 느껴지는 성취감이 있었고, 반복해서 계속 노출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경험했다.
똑똑한 아빠가 된 IT는 복장도착증을 경험하게 되었다.
환상에서는 이성의 복장을 하였을 때 흥분하게 되었고, 성적 흥분을 확실하게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과는 구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자를 분별할 수 있는 TQ인 나는, 소아성애자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쉽게 보면, 이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의 아이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게 되는 것인데, 환상을 통해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7명의 친구와 다르게, 성적인 흥분이나 만족감을 전혀 얻지 못했다.
아이들을 보고 성적인 흥분은 아예 없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성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분노를 했고, 아이들이 너무나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덕분에 나는 환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 우리 앞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 나랑 섹스하면 원하는 소원 하나 들어줄게. 어때?"
멀리 있을 때는 몰랐지만, '누군가'라는 사람이 가까이 왔을 때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몸매가 아름다웠고, 목소리가 관능적이었고, 얼굴도 예뻤다.
오히려 나는 이번에 성적인 흥분을 느꼈고, '누군가'와 키스하고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누군가'는 서로 성적으로 끌렸고, 육체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무섭게 느껴졌다.
나의 선택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을 느꼈고, 의아하지만 설렘도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둠과 빛을 모두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만약 섹스를 선택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나도 '그분'의 추종자가 되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교차하던 그때,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무엇인가가 나와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누군가'와 떨어졌고, 무엇인가가 우리를 보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무엇인가는 동물들이었는데, 좀 더 자세히, 가까이 가서 보니 동물의 탈을 쓴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환상일까 싶었는데, 내 주변에 다른 친구들이 환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현실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뒤로 하고 7명의 친구에게 소리치고 한 명씩 붙잡고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하며 환상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이렇게 다 같이 환상을 벗어나니, '누군가'가 우리에게도 쪽지를 주었다.
우리는 이 상황을 힘겨워했고, 경계했고, 동시에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준 쪽지를 보았다.
"지금 본 환상을 평생 보게 해 줄게. 그렇지 않으면 넌 죽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직접 널 만나러 올 거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본 쪽지와 내용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라는 단어가 없어졌고, '내가'라는 단어로 교체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있는 '누군가'라는 사람이 '그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놀라서 얼었지만, 곧바로 '그분'을 잡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