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슈엔 흑두 말차 현미차
오카야마 마트에서 시라오레를 사 오던 날 옆에 있길래 덩달아 사온 흑두 어쩌고 현미차. 이것도 사 오게 된 계기가 개그가 따로 없는데 루피시아 오카야마 한정 중에 포도우롱이 있어서 그걸 사 오는 길에 들렀던 마트인지라 저 흑두, 그러니까 검은콩을 포도로 보고 ‘포도가 들었다고? 현미차에?’ 하면서 사 온 것. 저기.. 옆에 흑두라고 써있잖아.. 그 정도는 읽을 수 있잖아.. 나중에 확인을 하면서 어찌나 황당하던지. 하지만 역시나 알았어도 사 왔을 것 같은 차. 이거 또 심상치 않은 게 차엽이 확실히 들어있고 우지말차까지 블랜딩 된 지역산 검은콩이 들어간 현미차. 현미녹차라면 한국도 내공이 꽤 깊다구. 어려서부터 현미녹차가 녹차의 전부인 줄 알고 자라온 사람들도 많다, 한국인의 까탈스러움을 보여주겠다. 와라 네놈. 홈페이지 기준 300g 400엔. 근데 제가 사온건 200g짜리입니다. 그래서인지 300엔이었음. 상미는 아마도 제조 1년.
일단 그림 자체가 좀 그냥 녹차같이 생겨서 뭔지 읽어보지도 않고 샀다가는 녹차인 줄 알 수도 있겠는데 이것은 현미차로서 맛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옛날부터 흔히 먹던 그 현미녹차의 맛이 맞다. 오카야마의 특산품인 검은콩을 찌고 말려서 그걸 다시 직화로 구워내어 블랜딩 했고 국산 100%의 현미를 사용했으니 나름 신선신선한 재료들을 모아서 만든 현미차 되시겠다. 현미만 해도 충분히 구수한 맛이 날 텐데 검정콩까지 구워서 넣었다고 하니 곡물차의 구수함이 크게 기대가 된다.
봉투를 열어서 향을 맡아보니 곡물의 약간 묵은내 같은 게 난다. 이것도 역시 말차가 들어있어서 아무래도 분말이 날리면서 나는 향이 좀 있는 듯하다. 볶은 현미와 말차의 향이 섞여서 독특한 향이 되었는데 그게 약간 나에게는 묵은내 비슷하게 나는 것 같다. 건엽을 덜어보면 돌돌 침형으로 빡세게 말려진 센차라고 하기에는 약간 대충대충 만든듯한 차엽에 볶은 현미가 한참 들어있고 대빵 큰 검은콩이 뙇하고 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말차가루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어서 가루가 많이 묻어나오니 주의. 볶은 현미를 몇 알 주워 먹어 봤는데 과자처럼 바삭하고 맛있다.
아무래도 현미차니까 투차량을 조금 늘려서 8g의 차를 90ml가량의 70도 물로 30초 우려 주었다. 벌써부터 겐마이차 특유의 꼬순내가 진하게 퍼진다. 보리차와 숭늉을 합쳐놓은 듯한 고소함. 이건 뭐 안 마셔봐도 아는 맛이고 마셔보니 또 그 맛이다. 검은콩을 사용한 게 이 제품의 특징일 텐데 콕 찝어서 검은콩의 맛이 어떤 건지 모르겠어서 좀 더 집중을 해본다. 한 모금 마실 때 현미맛이 일단 많이 나고 약간의 녹차맛이 은은하게 깔려있는데 다 마시고 나서야 약간 검은콩 두유 같은 걸 마시고 난 뒤의 그 콩맛이 살짝 있다. 꽤나 희미한 정도의 존재감이다. 차 자체의 맛은 그냥저냥 준수하고 역시나 현미차라 그런지 물 마시듯 쑥쑥 들어간다. 아니, 물보다 마시기 더 편한 듯. 들어간 차도 그렇게 캐릭터가 강한 차는 아닌지 너무 순하고 딱 기본의 느낌이었다. 사실 그냥 까먹고 3분쯤 우려도 전혀 지장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반대로 꽤나 여러 번 우러나는 건 또 장점. 어떻게 해도 강도가 70%를 넘지 못하는데 60%의 느낌으로 횟수를 여러 번 우러난다. 물을 많이 넣고 오래 우리면 비슷해질까 싶어 해 봐도 그건 좀 싱겁고 그냥 여러 번을 우러난다. 우려도 우려도 곡물차의 달달함이 계속 유지되는 차.
엽저를 보면 꽤나 실하게 찻잎이 들었는데도 전혀 녹차가 강하게 올라오지 않는다는 게 역시 신기하다. 이 차는 재미있으니 마셔보라고 여기저기 돌리기도 했던 차이고 또 딱히 돌아오는 감상평이 없었던 차이기도 하다. 그만큼 별 특징이 없었다는 뜻이겠지. 근데 밥차로 마시면 진짜 숭늉처럼 입가심과 에피타잇을 효과적으로 해주는 차이기도 하다. 간식보다는 식전식후에 잘 어울리는 차. 뭐랄까 지역 특산물로 만든 어디어디 지역 농협에서 나오는 차 같은 인상인데 아마도 고슈엔이 그런 이미지의 회사인가 보다. 혹은 내가 마트에서 사 온 고슈엔이 딱 그런 것만 골라온걸수도. 암튼 로컬스러운 느낌이 한껏 살아있는 재미있는 차였다. 고슈엔의 흑두 현미차,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