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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Jun 16. 2017

난 네가 좋아

평범한 국제결혼 이야기 (1)

그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2013년 2월의 어느날 시카고 오헤어 공항. 덴마크에 갔다가 다시 우리 팀에 합류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1년 먼저 미국에 와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었던 그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프로젝트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날이기도 했다.


(미국 미시건 도와지악에 위치한One World Center라는 NGO에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6개월간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6개월간 아프리카 한 국가에서 프로젝트를수행한 후 다시 미국으로 와 6개월간 활동보고를 한다. 1년에 4차례 (2월, 5월, 8월, 11월) 새로운팀이 시작한다. One World Center는 미국 미시건과 메사추세츠, 영국과 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 위치해 있다.)


긴 비행에 지쳐서 그랬겠지만 입국장에 도착한 그의 표정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팀원들과 목소리를 높였고, 처음 보는 나에게는 인사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6개월 후면 브라질 집으로 돌아갈 예정인 그와, 3개월 후 드디어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떠날 준비로 바빴던 나는 식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될 때 외에는 마주칠일이 거의 없었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니 같이 밥을 먹게 되더라도 긴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우와 잘생겼다. 친해져야지’ 하는 외모도 아니니 굳이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의 외모는 이제 물이 올랐고, 내 눈에도 콩깍지가 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고, 나는 모잠비크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있던 포르투갈어를 물어보는 중이었다. 그 전날 나는 우리 팀원들과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만들며 브라질 친구에게 문장 하나를 배웠는데, 그건 다름 아닌 “나는 종이에 실을 묶고 있다” 였다. 


"데이빗, 어제 로리아나가 포르투갈어 문장 하나 알려줬어. ‘Estou amarrando linha no papel.’ 이건 앞으로 평생 써먹을 일이 없을 거야."


“아니. 예를 들어, 네가 친구랑 같이 바닷가에 갔는데 저기 멋진 남자가 있다고 생각해봐. 그때 친구한테 ‘나 저 남자랑 같이 종이에 실 묶고 싶어’라고 응용하면 되지.”


참 브라질 사람다운 발상이다. 

그 동안 모범생 스타일에 재미없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런 농담도 할 줄 알고, 많이 웃고 떠들며 조금 친해지게 되었다. 이날 이후 그는 나와 마주칠때마다 나랑 같이 종이에 실을 묶자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내가 좋다고 했고 은근슬쩍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스킨십을 시도하려 했다. 그의 팀에는 유난히도 한국인이 많아 자연스레 기본적인 한국어 단어를 알고 있었는데, 누가 가르쳐줬는지 내 옆에 와서 ‘사랑해’라고 말해 나를 당황스럽게 하곤 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난 네가 좋아.”


“내가 왜 좋은데?”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서.”


“착한 사람이 뭔데?”


“맡은 일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 힘들 때도와주고, 친절한 사람.”


당시 난 이런저런 준비와 과제로 바쁘기도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와 공동체 등에 대한 생각과 회의감으로 그의 고백에 이렇게 철벽을 치고 냉정하게 반응했다. 다소 예의가 없을 수도 있는 나의 차가운 질문에 그는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을 해주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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