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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정 Oct 25. 2024

에두르는 이야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면 베이글의 구멍 속으로 우주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왜 하필 구멍 뚫린 베이글이었을까?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 말하고자 할 때 요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점을 중심으로 그 테두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면서 결국 중심인 요점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의 각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한 말이라고 한다. 


글을 쓰다 보면 한 번쯤 듣는 말이다. 좋은 말이라는 건 알지만 그만큼 어려운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알면서도 이야기를 그렇게 쓰지 못한 것에 대해 쿡쿡 찔렸다. 



뜬금없는 맥락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만, 저 말을 듣고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유튜버가 말하기를 뷰티에 있어서도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는 것이 가성비도 좋고 훨씬 돋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은 머릿결이 안 좋은데 아무리 돈을 써도 티가 안 나고, 상대적으로 피부와 패션 감각이 좋아서 옷 하나만 코디를 잘해도 사람들이 바로 알아봐 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근까지 이런저런 애먼 곳에 관심을 두었던 내가 떠올랐다. 영상편집을 배워야 하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키워서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하나, 영상 자막 알바 같은 거라도 해야 하나. 온갖 돈 번다는 일과 퍼스널 브랜딩에 현혹되어서 산만하게 정신과 시간을 흩뜨리고 다녔다. 결국 제대로 한 건 하나도 없고 시작조차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그걸 중점에 두고 거기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기 자신이 되라고들 하지만 인생의 많은 시간 동안 되고 싶은 내가 뭔지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롤모델을 열심히 찾기도 하고,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쫓아가기도 하고, 왜 내가 끌리는지도 모르고 남이 되려 하기도 한다. 

되고 싶은 내가 결국 요점이자 중심이 될 것이다. 그것을 둘러싼 무수한 시간과 실패는 비로소 되고 싶은 나를 구성하는 요소이자 그 내가 되기 위해 에둘러야만 했던 과정이자 단계들인 셈이다. 베이글과 도넛도 가운데가 뚫려 있는 것이 그것의 정체성이 아니던가. 


팽이를 생각해 보자. 팽이를 돌리기 위해서는 팽이의 몸을 감싸며 줄을 한 줄 한 줄 감아야 한다. 그런 후 바닥에 팽이를 떨친 후 멈추지 않도록 계속 쳐줘야 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이 바로 팽이의 운명이자 본질이므로. 

사람도 마찬가지로 멈추고 오랫동안 안주하면 녹이 슬고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뭘 하고 싶었더라?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줄을 꼼꼼히 감는 작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줄을 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돌아갈 수나 있을는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할 것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이후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줄을 감자. 언젠가는 가운데에 다다를 것이고 그때는 나의 우주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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