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식물은 싫어한다기보다는 엄두가 안 나서 겁내는 쪽에 가깝다. 내 손을 거쳐 간 그동안의 식물들은 간신히 연명을 이어가다가 생을 마감한 아이들뿐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사무실의 난초들에 꼬박꼬박 물을 주고 영양제도 줬지만 살아난 아이들이 없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얻은 겨자씨를 한번 키워볼까 싶어서 작은 화분에 심은 적이 있었다. 가느다란 싹이 나오는가 싶더니 그 상태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집안 환경과 바쁘다는 이유로 무심했던 내 탓이었다. 이후로 나는 식물 같은 걸 키울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내 손을 거쳐 가면 다 죽어. 난 식물계의 저승사자야.
그런데 식집사 열풍이 불어서였을까? 꽃이 없으면 다 같은 화초라고만 여겼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화분에 담긴 이런저런 식물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라는 사람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 하나 케어하기도 힘든데 키우긴 뭘 키워.
그런 우리 집에 2년 넘게 자라는 녀석이 있다.
발단은 재작년 4월 말이었다. 소규모로 식물을 판매하는 지인이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여러 종류의 꽃과 식물들이 공간을 화사하게 밝혔다. 내가 간 날은 전시가 끝나는 날이었는데 거기 있던 식물들을 할인해서 팔거나 그냥 주기도 했다. 지인은 전시를 정리하면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됐다고 했겠지만 그날따라 눈길이 자꾸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 몸통만 한 크기의 화분에 담긴 몬스테라와 자그마한 크기의 아스파라거스를 골랐다.
집에서 그나마 해가 잘 드는 곳에 두 녀석의 자리를 잡아줬다. 아스파라거스는 물을 자주 줘야 한다고 들었지만 과습으로 죽는 식물도 많다는 말 때문에 물 주는 시기를 맞추는 게 어려웠다. 흙을 만져보고 체크하는 게 정확하다지만 화분의 흙을 아무리 만져도 내 손의 감각은 이게 적당한 습도인지 영 알지를 못했다.
계절은 금방 바뀌었고 나도 이런저런 일 때문에 며칠 간격으로 녀석을 잊곤 했다. 그러는 사이 파릇했던 아스파라거스의 가지는 노래졌고 겨울을 지나면서 녀석은 허옇게 질려갔다.
병들어 보이는 부분은 과감히 잘라냈지만 나머지 부분마저 시들해져 갔다. 아무래도 소생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 때문인지 화석처럼 변한 녀석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다가 다음 해가 되어서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식물을 많이 죽여봐야 잘 키울 수 있다지만 마음이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그 녀석만 데려왔다면 나는 다시는 식물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하직한 아스파라거스의 곁에 있었던 몬스테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몬스테라의 이파리는 두 개였다. 그런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기존의 줄기에서 새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풀피리를 불려고 나뭇잎을 둥글게 말아놓은 것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는 사이 그 풀피리 같은 자태가 도르르 풀리면서 마침내 연둣빛 이파리를 펼쳤다. 감촉이 너무 부드럽고 얇아서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생명의 신비가 이런 건가 싶어 이파리가 완전히 펴질 때까지 사진도 계속 찍고 인스타에도 올리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걸 시작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새 이파리가 생겨났다. 그렇게 풀피리 같은 새 잎을 발견할 때마다 어젯밤에도 있었던가 하고 매번 내 기억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만큼 몬스테라의 새 잎은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였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물을 줬는데 한 번은 애정이 과했던지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화분 밑으로 물이 철철 넘쳤다. 그걸 닦아내느라 고생을 했는데 그다음 달에 똑같은 실수를 한 번 더 했다. 혹시라도 그 두 번의 실수 때문에 과습으로 죽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했다.
마음 같아서는 볕과 바람이 적당한 날에는 베란다에도 내놓아 콧바람을 쐬어주고 싶지만 내가 들기에는 너무 무거운 아이라 옮길 수가 없었다. 그 대신 환기할 때라도 통풍이 되도록 창문을 열어주고 이파리가 너무 한쪽 방향으로 쏠리면 주기적으로 위치를 돌려주기도 했다. 가끔씩 잘 자라고 있냐고 들릴 듯 말 듯 말을 걸고 새삼스레 눈길을 주기도 했다. 나름 마음을 쓰기는 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인지 얼마 후 몬스테라는 또다시 새 잎을 키워냈다. 무려 여섯 번째 이파리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물 주는 것 밖에 하는 게 없는데 두 개였던 이파리가 세배나 늘어났다니... 이 녀석의 생명력이 대견하고 고맙기만 할 따름이었다. 내 평생 일 년 넘게 죽지 않고 크는 것도 기적인데 끊임없이 자라는 게 감탄스러웠다.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나도 이 녀석처럼 성장하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사소한 칭찬과 응원들을 그러모아두었다가 내 마음 같지 않은 날에는 그걸 하나씩 펼쳐볼 것이다. 그 자양분으로 작은 성공이 하나씩 돋아나서 느리더라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미노 행진의 나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