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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정 Oct 25. 2024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20여 년 전 아는 언니가 “글만 쓰면서 살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이 언니 참 꿈이 소박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그 언니가 말했던 꿈이 얼마나 크고 이루기 어려운 꿈인지를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거나 어떤 자리를 오래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이 수반된다.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재능이나 열정뿐만 아니라 유지할 수 있는 노력과 운까지 고루 갖춰져야 비로소 가능하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다른 요소가 그것을 더 채워서 균형을 맞춰야만 계속한다는 것이 가능해진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하곤 한다. 마라톤을 준비 없이 힘들지 않게 한 번에 해내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없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의 마라톤 완주 편에서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은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10여 년 동안 달리기를 그렇게 좋아하고 자주 한 그에게도 마라톤은 높은 장벽이었다. 초반부터 반복되는 언덕 구간은 더욱더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저 영상으로 보는 것뿐인데도 얼마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지 알 것만 같았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지나가는 러너 중의 한 명인 시각장애인 할아버지였다. 길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의 가이드 줄에 방향을 의지하며 쉼 없이 뛰는 시각장애인 할아버지를 보며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도전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합리화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완주를 마쳤다.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스스로 얼마나 즐기고 의미 부여를 하는지도 그것을 해내는 것만큼 중요하다.






<슈퍼스타K> 이후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다시 보게 된 건 꽤 오랜만이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싱어게인3>였다. 두 번 정도 봤을 때 한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27호 가수(임지수 분)가 자신이 학창 시절부터 혼자 즐겨 부르며 위로받았던 김광석의 노래를 선곡한 이유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었다. 그동안에는 서바이벌을 통해서만 무대를 준비하다 보니 편안한 마음보다는 생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곡임에도 선뜻 그 곡을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방송 이후 유튜브 구독자들이 달아준 응원의 댓글들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자신이 경연용 가수도 아니며 음악을 사랑했고 사랑으로 노래하는 가수라는 것을 무대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 곡의 열창을 통해 심사위원 절반 이상의 표를 얻어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정되자, 그냥 잘하는 거 하자는 마음이 많았는데 ‘내가 언제부터 잘하려고 음악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물을 비쳤다. 또 한 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녀의 말에 임재범은 ‘기회는 우리가 준 게 아니라 스스로 얻은 것이니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먼저 노래했다는 것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거기에 옆에 있던 백지영이 덧붙였다. ‘우리 역시 지금도 잘하려고 노력한다’고. 



사실 내가 응원하는 후보는 따로 있었지만, 이 장면에서 가슴에 찌르르한 느낌이 전해지며 꽤나 기억에 오래 남았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그것을 계속해나가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다 보면 잘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것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때로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을 하거나 남이 원하는 걸 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멀리 지나왔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걸 증명하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거기서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찾기 위해 다시 길을 더듬어 돌아갈지 아니면, 이제 그만할지 정해야 한다. 여기서 적지 않은 사람이 꿈을 잃거나 포기한다. 


잘 된 사람을 보며 어떤 이는 어쩌다 잘 된 거라며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운이라는 것도 잡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유효한 것이다. 계속 그 자리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만이 그것이 운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내가 괜히 했다거나 시간을 버리는 건 아닌지 의심하며 했던 것조차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될 때도 있다. 그것은 내가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그 길에 서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오정세의 수상 소감에 대해 왜 명언이라고 했는지 처음에 몰랐다가 뒤늦게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어떤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심하게 망하기도 하고, 또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좋은 상까지 받는 작품도 있네요.


100편 다 결과가 다르다는 건 좀 신기한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 100편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꿋꿋이, 그리고 또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은,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힘든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여러분들의 동백꽃이 곧 활짝 피기를 저 배우 오정세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정세 수상소감 / 56회 백상예술대상-




무언가를 계속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잘하게 되는 건 더욱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마음을 들여 지속해 나간다면 작더라도 그것은 언젠가 내게 응답할 것이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그렇게 나아지는 것이 반복되면 더 이상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껴지는 날도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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