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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정 Oct 25. 2024

성장하려면 우산을 접어야 한다


지하철 역 안 플랫폼에서 다음 차를 기다리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떤 아저씨가 바깥에서 펼친 우산을 그대로 든 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누군가와 실랑이 중이었는지 큰소리로 통화하며 싸우던 그는 나를 지나쳐 몇 발짝 옆에 섰다. 

다음 차의 배차 간격은 유난히 길었다. 그때까지 그의 고성은 플랫폼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모든 이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건 말건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갔다. 원래 남을 상관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런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통화 상대에게 화가 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아저씨를 보며 시끄러워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마음속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은 에세이 수업을 받고 내가 쓴 글에 대해 피드백을 받은 날이었다.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고 아끼는 글을 냈는데 돌아온 피드백에는 고쳐야 할 점에 대해서만 수두룩했다. 이메일로 온 내용이라 텍스트로만 되어 있어서 더 냉정하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번 어지러워진 마음은 하룻밤이 지나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지만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이런 피드백을 받는 게 처음도 아닌데 마음 컨트롤이 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당황스러우면서도 답답했다. 아끼던 내용의 글에 대한 거라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맞는 말인 건 인정하면서도 무언가가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뭘까 고민하다가 지적받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에 대해 동일한 비율로 듣고 싶었던 것이다. 단점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누구에게서든 듣기 쉽다. 

그러나 장점은 다르다. 사람에 대해서든 글에 대해서든 좋은 점을 캐치하고 그걸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건 의외로 어렵다. 단점에 대해 알게 되고 고치는 건 좋은 거지만, 그것만 계속 듣고 있으면 자신감이 한없이 떨어져 의욕이 사라져 버린다.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을 가져간다는 건 더 낫게 만드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 피드백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냉정했다. 내 마음이 어지러운 이유에 대해 알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는 내가 봐도 그렇게 고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선생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자기도 긴 습작 기간 거쳤다면서 남한테 이렇게 상처 주는 말 해도 되는 건가. 

속으로만 궁시렁 궁시렁 불평을 늘어놓는 동안 내 마음은 망쳐버린 라테아트처럼 찌그러져 갔다. 평정심이 무너지고 나니 다른 일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게 뭐라고......


그러는 동안 어느덧 종강 날이 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내가 그렇게 못 쓰는 건 아니니 힘내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선생님에게 장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듯 글을 쓴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는 그게 독이 된다고 대답했다. 자기 글의 장단점을 동일한 비율로 알고 잘 운용하면 괜찮지만, 그걸 잘 컨트롤하지 못하면 장점만 믿고 게으른 글이 되어버린다고 말이다. 자기 경험에 대해 얘기해 주면서 그렇게 고치는 과정에서 글이 좋아지는 걸 알게 되고 자신감이 생기면 그게 장점이 되는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종강 직후 마지막으로 피드백 받을 글을 보내기 전에 선생님에게 들었던 몇 가지 조언에 대해 떠올리고 그걸 참고 삼아 다시 한번 고쳐보았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처음 썼던 것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며칠 후 온 답장에서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글 중 가장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고쳐야 할 점도 함께. 그러나 그 부분은 내가 망설이고 확신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옹졸했는지 깨달았다. 글은 확실히 나아졌고 피드백 받은 부분을 반영해서 다시 쓰면 더 좋아질 것이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고맙다는 답을 보냈다.






지하철 역 안의 아저씨에게서 나를 본 건 그 옹졸한 마음 때문이었다. 우산으로 싫은 소리를 다 튕겨내면서 내 생각만 말하고 있었다. 그 우산 속에서 나는 내가 외치는 궁색한 불만만 듣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 그 우산을 접고 부끄러운 마음을 드러내려 한다. 그래야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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