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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ots Aug 09. 2023

표현이 발화되는 현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나는 2017년 늦은 겨울부터 보치아를 시작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운동인 보치아는 마루바닥에서 하는 컬링과 비슷하다.


나는 홈통이라는 기구를 사용해서 공을 바닥에 굴렸다. 팀으로 나간 아마추어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보치아는 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수동적인 몸이 보치아를 통해 능동적인 몸이 되었다. 나의 몸은 움직이는 몸이 된 것이다.


나는 보치아를 계속하고 싶었다. 이 운동은 특수해서 아무 때나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잠시 멈췄던 그림을 다시 그렸다.


첫 개인전이 끝난 후, 나는 나의 몸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홈통을 사용하지 않고 발로 공을 굴리게 되었다. 물론 홈통을 사용했을 때보다 정확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 공을 굴리는 것이 좋았다. 나는 육상이나 축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신체를 더 능동적으로 사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단색의 그림을 생각해봤다. 그 그림은 그림을 계속 그릴수록 점점 더 섬세하게 그려졌다. 나는 섬세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입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까. 나는 정확하게 굴러가지 않는 공에서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그림을 떠올렸다.


몸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졌다. 나는 압박붕대로 붓을 팔에 감싸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몸의 떨림을 자유롭게 내버려둔 그림은 정교한 단색의 그림과 달랐다.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전시벽에 걸렸다. 그림이 바뀐 후의 나의 일상은 또 한번 변했다. 몸에 대한 생각이 그림에 반영되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다. 나는 이런 일상을 통해 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몸에 대한 생각이 자유로워질수록 그림은 변했다. 다양한 색과 재료를 사용했고 그림의 크기도 점점 커졌다. 나의 몸은 내 그림의 시발점이다.


나의 그림은 컴퓨터 작업도 포함한다. 코딩으로 그린 간단한 드로잉이나 종이나 캔버스에 그린 그림의 일부를 컴퓨터로 옮겨오는 일은 언어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깊게 해줬다.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림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가능성은 프로그래밍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 가능하다.


이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코딩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나의 몸은 이렇게 또 확장된다. 언어가 나의 몸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내 몸과 그림의 관계가 정리되었다. 나는 더 나아가 나의 몸과 나의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생각했다. 관계 맺음의 다음은 관계 맺은 몸과 환경의 소통이다. 이런 생각은 내 몸과 주위 환경의 경계를 허물게 해주었다. 단순히 불편하다는 생각보다 왜 불편한지,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내 몸을 생각하게 되었다.


몸의 언어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에게 그림은 몸의 운동이며 동시에 말하기다. 몸의 언어는 자신이 직면한 현실에서 발화된다. 몸의 언어는 자신의 몸을 갱신함으로 새로운 언어로 향한다. 또 다른 현실의 몸과 또 다른 표현을 마주한다.


보치아는 내 몸을 그림 그리는 몸으로 바꿔주었다. 내 몸과 내 몸 주변의 관계와 현상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었고, 말하는 몸으로 바꿔주었다. 앞으로 나는 내 몸을 더 능동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실험을 시도할 것이다. 현실과 그림은 내 몸이 자유로워진 만큼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나의 언어는 실험의 언어다. 언어는 이렇게 확장한다.


첫 번째 작업실의 풍경


2022년 단체 전시의 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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