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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ots Oct 11. 2023

도구를 사용해서 신체를 확장하기

몇 년 전에 인두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위험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 인두화는 기존의 잉크 펜 드로잉과 닮은 지점이 있었다. 그리고 신체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시킬 수 있었다.


내가 인두화를 처음 배울 때 마주한 문제는 인두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였다. 이것을 연필이나 볼펜처럼 물자니 치아가 금방 상할 것 같았다. 나는 보치아에서 홈통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헬멧에 고정된 스틱으로 공을 건드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헬멧에 스마트폰 거치대를 고정해서 거치대 끝에 인두펜을 고정해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첫 시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헬멧을 쓰고 인두화를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릴만 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어려운 점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느낀 어려움은 힘조절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힘조절이 안 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두화는 인두펜의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금방 나무가 타버려서 움푹 패이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 그리고 오히려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의 문제는 두 번째 어려움이었다. 헬멧에 거치대를 이으니까 무게는 더 무거운데 이것을 머리에 착용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목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자세도 좋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더 좋은 작업환경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헬멧을 벗는 대신 스마트폰 거치대를 테이블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거치대 끝에 인두펜을 붕대로 고정시켰다. 이런 발상은 보치아 BC3 종목의 선수들의 모습에서 가져왔다. 전신의 사용이 어려운 그들은 머리에 헬멧을 쓰고 헬멧에 고정된 막대기로 공을 굴린다. 나는 거치대에 고정된 인두펜을 얼굴로 미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예전 방법에 비교해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조금 더 개선된 인터페이스


인두화는 잉크 펜 드로잉과 많은 지점이 닮았다. 짧은 선을 여러 번 그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과 스마트폰 거치대가 컴퍼스가 되어서 그어진 선이 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신체의 장애가 이미지 문법의 개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두화는 다루기 어려운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되었다. 내 몸에 맞게 도구를 개조한다면 위험한 도구라도 안전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접근성과 경험의 문제다. 나는 인두화를 통해 또 다른 신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해놓고 보니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시야도 넓어졌다.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신체를 읽어낼 때 중요한 요소다. 내가 신체를 통해 읽고 싶은 것은 신체의 능동성이었다. 장애인의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대부분 수동적이다. 나는 나의 신체를 풀어내고 싶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신체는 해석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 방법을 찾아낸다. 신체를 읽어내는 일은 신체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의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어쩌면 내가 사용자 경험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해 그림을 말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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