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왜 이렇게 많은지
오늘부터 제주로 내려온 27살 휴학생, 게스트하우스 스탭 지원합니다
당시 게스트하우스문화가 유행처럼 번질 때였고, 다양한 유형의 게스트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다. 새로운 인연을 적극적으로 찾는 파티형, 조용한 음악에 책이 가득한 힐링형, 저녁과 아침을 근사하게 차려주는 다이닝형, 주인장 매일 투어를 진행하는 투어형 등 각 유형에 따라 스텝의 역할도 각양각색이었다. 원하는 곳을 찾기 위해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커뮤니티에 스텝 지원 글을 올렸다.
보통은 미리 스텝 자리를 구하고 제주도에 오지만, 한 달이나 지낼 곳을 사진 몇 장으로 정하기는 싫었다. 제주도에서 지내며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볼 요량으로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도착하자마자 렌터카 하나를 빌려 남매가 운영하는 조용한 바다 마을 게스트하우스, 스위스 마을 안에 위치한 다이닝형 게스트하우스 등 몇 곳을 다녔다.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는데, 아직은 마음에 썩 차지 않았다.
하루 묵어보고 결정하면 어때요?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이 쓰는 방의 침대를 하나 내어주겠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관광지가 밀집된 지역인 중문에 있는 파티형 게스트하우스였다. 시끄러운 게스트하우스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하루는 어딘가에서 묵어야 했기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게다가 일주일에 단 이틀만 일하면 되는 파격적인 근무조건이었다.
우리는 스탭분들을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여행자니까요!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이 밝은 목소리로 맞이해 주며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줬다. 민박집을 개조한 건물에 6개의 방이 있었고, 두 개의 방을 스텝이 쓰고 있었다. 스탭은 총 6명, 이틀씩 돌아가며 근무하고 쉬는 날은 다 같이 여행을 다니거나 쉰다고 했다. 그렇게 남자 스텝방 네 자리 중 하나 남은 2층 구석 자리에 짐을 풀었다.
경험 삼아 파티에도 참석하게 됐는데 어색한 첫 파티가 끝나고 스탭끼리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서로가 매우 친한 사이 같았다. 시트콤 같은 스텝 생활을 할 거라는 소개글이 이해가 됐다. 처음 제주도에 올 때 상상한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생활은 아니라, 깊이 고민하며 불편한 하룻밤을 보냈다.
저 다른 게스트하우스 좀 보고 올게요.
아침 일찍 떠나며 건넨 인사에 모든 스텝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주인장이 함께 일할 새로운 스텝이라고 잘못 전달한 탓이었다. 졸지에 배신자가 되어 원망의 눈초리를 받았다. 하지만 얼른 거취를 정해야 했기에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차를 몰았다. 매일 밤 오름 투어를 진행하며 사진도 찍어주는 투어형 게스트하우스였다. 마음은 바빴지만 운전하는 내내 떠나올 때 마주한 스텝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초보 운전에 여러 가지 신경을 쓰다 보니 멀쩡히 서있는 차량과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렌터카 회사에 사고 접수를 하자 보험사가 찾아왔다. 첫 교통사고라 너무 놀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보험사에서 렌터카를 회수해 가서 졸지에 갈 곳도, 차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하필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혹시 저 지금 다시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하루를 묵으며 조금이라도 정이 들었던 그곳으로 돌아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했다. 다시 돌아가서 어떻게 설명할지 눈앞이 깜깜하고, 따가운 눈초리를 다시 받을 게 걱정됐지만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택시를 불러 잡아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 달을 살아갈 게스트하우스가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