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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과 협재사이, 귀덕리

한 달 동안 잘 부탁해요.

by 제제



제가 묵은 에어비앤비 사장님 소개해줄게요.



같이 일했던 동료가 제주도 여행 때 알게 된 분이라며 연락처를 전달해 줬다. 미리 연락해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함께 전달해 주었다. 제주도에서 묵으며 3주간 지낼 숙소를 찾을 생각이었기에, 며칠은 신세를 지며 제주도 생활 이야기도 들어볼 요량으로 연락을 드렸다. 감성 숙소로 나름 유명세를 타서 예약하기도 힘든 곳이었지만, 주인아저씨가 머물던 방이 비어 특별히 자리를 내준다고 했다.




내일이면 손님들 다 나가니 편한 방 골라서 써요.



찾아간 곳은 귀덕리, 애월과 협재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름도 알 수 없던 그 숙소는 안채와 별채로 구성된 제주 구옥을 개조한 숙소였다. 동료의 설명과는 달리, 숙소는 썰렁했다. 주인아저씨도 뭔가 차가운 듯 느껴졌다. 첫날은 늦잠을 잤는데, 아침이 되자 큰집에 정말 아무도 없이 혼자 남겨졌다.



숙소 곳곳에는 그동안 숙소를 이용한 손님들의 메모와 편지가 남겨져 있었다. 주변 맛집을 정성스레 남겨둔 노트와 숙소 풍경을 그려놓은 그림들이 감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낮에는 한달살이 숙소를 찾아보고 동네 산책을 하며 노트 속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밤에는 혼자 아이패드로 영화를 크게 틀어놓고 보다 잠이 들었다. 혼자여서인지 구옥이어서인지 공기가 쌀쌀했다.



식사 안 했으면 같이 저녁 먹을래요?



삼일 정도 지났을까, 잘 보이지 않던 주인아저씨가 마침 숙소 청소를 하고 있었다. 혼자 큰 집을 쓰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트에서 제주 흑돼지를 사들고 와 문을 활짝 열고 바비큐를 했다. 꿈꾸던 현지인의 삶이었다.



원래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이야기, 제주도에 내려오게 된 이야기, 키우던 고양이 이야기, 개인 사정이 생겨 숙소를 그만둘 생각이라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끝에는 가끔 숙소에 거미줄이나 걷고 빨래나 거둬달라며 숙소비와 관계없이 원하는 만큼 머물다 가라는 고마운 제안을 해주셨다. 언젠가 구옥을 개조해 에어비앤비를 하고 싶었는데,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었다.


이름도 생소했던 귀덕리에서의 한 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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