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도 좋지만 함께도 좋았던
6월에 제주도 올사람?
혼자만의 생활도 좋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도 보내고 싶었다. 친한 동기 몇 명이 있는 방에 올 사람이 있나 던져봤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동기였지만 학교에서 가는 것 말고 어딘가 함께 간 적은 없었고 매번 한 번 같이 여행 가자 말만 했다. 다행히 마침 한 친구가 여름휴가를 쓸 계획이라 제주도로 온다고 했다.
친구는 꼭 가보고 싶은 호텔이 있다고 했다. 유명 건축가가 지은 호텔로 인스타그램에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평소 비싼 호텔도, 호텔 수영장도, 거의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새로운 경험이겠다 싶었다. 호텔이 정해지자 여행할 지역이 정해졌고, 맛집이나 갈 곳은 나만 믿으라는 말을 전했다.
나 내일 11시 45분 도착, 공항에서 보자!
빌려둔 렌터카를 찾기 위해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렌터카 업체 버스를 타고 차를 빌려와 다시 공항에 와 친구를 태웠다. 첫날의 코스는 사라봉에서 제주 전경을 본 후 하루방보쌈에서 흑돼지 보쌈을 먹는 거였다. 친구에게 제주에 소개할 때 첫날 일정으로 추천하는 나만의 코스였다.
가는 길에 묵을 호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리까르도 레고레타가 지은 유명 건축물이 뭐가 있는지에서 제주도에 있던 그의 유작이 철거됐다는 이야기로 흐르다가 한국의 건축·예술 인식이 아쉽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평소와 완전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는 게 신기하고 생각보다 깊이 있는 친구의 지식도 놀라웠다.
평일 낮이어서인지, 다행히 호텔 수영장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호텔 수영장을 거의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목욕 가운을 입어도 되는지, 신발은 어떻게 하는지, 수영모가 필수인지, 챙길 건 무엇인지 친구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가야 했다. 친구는 익숙해 보이는데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물놀이에 지쳐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한라산 옆 가장 높은 곳 윗세오름으로 향했다. 숙소 근처에서 김밥 한 줄을 사들고 11시쯤 입구에 도착했다. 친구는 이미 한 번 한라산을 올랐는데 가는데만 거의 4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했다.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가는 내내 정말 힘들었는데, 날씨도 흐려서 공포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네 시간 가까이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 한라산은 꼭 올라보고 싶었는데, 덕분에 올랐다는 이야기, 그동안의 제주생활 이야기, 만나온 사람들 이야기 등 친구와는 한 번도 얘기해보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긴 등산을 해본 적이 없어 가는 내내 힘들었지만, 함께한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구름이 발밑에 있고, 멀리 보이는 바다와 곳곳의 큰 바위들이 생경했다. 다 식은 차가운 김밥을 먹었는데 어떤 김밥보다 맛있었다. 마침 날씨도 개어 파란 하늘도 볼 수 있었는데, 날씨요정인 친구 덕분인 듯싶었다. 산에서 내려와 숙소에서 바비큐를 하며 하루를 일찍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은 안도 다다오의 본태박물관과 이타미 준의 방주교회를 보고 산방산이 보이는 카페를 갔다. 저녁은 공항 근처 흑돼지 집을 갔는데, 마침 일몰을 보며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딱히 여행 계획을 짜지 않았는데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다. 제주의 건축과 독특한 자연을 돌아보는 꽤 잘 짜인 여행 코스 같았다.
누나, 태교여행 한 번 와야지!
다음 여행 메이트는 가족이었다. 8개월 된 임신부였던 누나가 태교 여행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주도로 내려와 함께 하자고 했다. 다른 가족은 일정이 안 맞아 누나와 매형, 셋만의 여행이 됐는데 부모님 없는 가족여행이 처음이고, 사실상 처음 시간을 보내는 매형과의 여행도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됐다.
이번에도 렌터카를 빌리고 전복김밥을 웰컴푸드로 준비해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사라봉에 올라 제주전경을 일몰과 함께 봤다. 그 후 세화 쪽 독채 펜션에서 바비큐를 했는데 세화 해변에서의 한가로운 밤 산책을 기대했지만, 한밤 중의 부부싸움 덕에 심난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3박 4일 동안 만삭인 누나와 뱃속의 아이에게 제주의 자연을 보여줬다. 비자림에서 산책을 하고 휴애리에서 수국을 구경했다. 오름을 오르기도 하고, 신창 풍차해변에서 야간 드라이브를 했다. 가이드 겸 스냅사진작가가 되어 누나의 만삭 사진을 제주의 풍경과 함께 담았다.
제주의 맛도 경험했다. 폐교를 개조한 카페 명월국민학교와 유명한 도넛 카페 노티드도 방문했다. 생선 조림과 고등어회, 보말칼국수도 먹었다. 마지막 날은 일정이 늦어져 흑돼지 고깃집을 못 가고 공항에 있는 중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시간 계산을 잘 못해 파이널콜 방송을 들으며 겨우 비행기를 탄 다이내믹한 경험도 했다.
너무 다른 두 여행이었지만, 10년 된 친구와 30년 넘게 지낸 가족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제주가 선물해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