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진달래꽃'(김소월 시집, 매문사 1925)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바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줍니다.
-김소월, '옛이야기' 중
나는 요즘 서점을 공부 중이다. 서점에 관한 책들을 사모으는 이유는 사라져 가는 독립서점을 꾸역꾸역 붙들고 싶어서다. 나는 서점 하나가 그 지역의 이야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점이 사라지는 것을 지역이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시리게 느낀다. 서점에 관한 책들과 인터뷰를 읽다 보니, 서점은 또 한 사람의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사람과 지역, 서점, 이야기는 하나의 생명체인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해주시는 옛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했다. 뭔 구닥다리 같은 옛날이야기만 하느냐고 구박마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릴 적 아버지라는 걸 생각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사회를 살아내면서 아버지라는 명목으로, 어른이라는 명목으로 찢기고 밟히고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야기로만은 남아, 외롭고 고단할 때 이따금씩 불러오는 것이었다.
내가 시를 읽는 것도 어쩌면 옛이야기를 보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오롯하게 어른으로서 '나'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해 본다. 옛이야기는 지금과 호흡하며, 내 자신과의 화해로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