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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Feb 27. 2024

연착되는 마음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유수연 시집, 창비 2023)

마음만 먹으면 침입하기 쉬운 등대에 대해 말하며

마음은 어떻게 먹는 거야, 어떻게 끌 수 있을까


(...)


우리는 붉은 구름으로 가득했고

온통 뭉개진 생몰


뭉쳐지고 흩어지는 비를 맞고 있었다

식어버린 하루를 보았고


연착되는 마음을 알았다


멀리 기적이 울고 손 흔드는 사람이

안녕, 하는 것인지 안녕,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유수연, '어둠은 미안해' 중


 새벽에 애인을 역으로 데려다주고, 플랫폼에서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동이 텄다. 기차가 왔다. 애인이 떠나자 새벽도 함께 떠났다. 역까지 걷는 거리를 포함해서 2시간가량의 시간을 씩씩하게 감내하는 애인에게 늘 고맙다. 그래서 보내고 나면 늘 미안한 감정들과 마주한다. 애인도 내게 미안해한다. 출근도 해야 되는데 새벽에 나와 역까지 바래다준다면서 말이다.

 오늘은 유난히 '연착되는 마음을 알았다'. 애인을 보내고 편지를 끄적거렸다. 나는 식스센스가 발달된 사람인 것 같다. 어느 날 애인이 영화 보면서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랬다. 나는 이 얘기는 새까맣게 잊고, 초콜릿을 사서 영화를 봤다.

 "내 말 기억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기억나지 않았다.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말했었구나. 그냥 초콜릿을 사 왔는데, 그것이 이전에 이야기했던 것일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본다.

 "난 네가 기억하고 있어서 신경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애인은 밥을 먹을 때, 먼저 숟가락을 드는 것을 싫어한댔다. 나는 애인이 싫다고 말한 것을 까맣게 잊고, 어느새 숟가락을 함께 뜨는 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었다.

 몸으로 익힌 언어들은 어쩌면 이렇게 연착되는 마음이 되는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습관이라는 언어로 늘 연착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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