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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Mar 04. 2024

기도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박라연 시집, 창비 2018)

악의는 물론 호의까지도 넘치면 곤란하다는 것

서로가 볼 수 있으라고 자라나게 하신 것


너는 언제쯤 알았니?


잘라내어도 아프지 않은 부위라는 거

피 한 방울 안 흘리게 그 흔적 지워주신 것 말이야


용서와 칭찬의 말씀이었다는 거

-박라연, '자라나는 선물' 중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군대 상관이었던 대대장이다. 인간관계는 쌍방과실임을 알면서도 그가 나에게 던 수치와 모욕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를테면 내가 지휘하는 병사들 앞에서 그는 얼굴을 붉히며 호통을 쳤다. 혹은 조롱 섞인 말들로 나를 깔봤다.

 그때의 조롱, 모욕이 손톱처럼 자라나 나를 불편하게 한다. 아직도 과거와의 화해를 이루지 못했다.

 "얘도 좀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인사과장으로 있으면서 심리적으로 어려운 병사들을 만나면, 부대에 상담관 선생님을 모시곤 했었다. 그 상담관님 앞에서 대대장은 나를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2년이란 짧은 군생활에 1년을 남기고 바뀐 대대장이 이리도 어려울 줄이야. 바뀐 대대장과 나는 '정상'이 아닌 관계가 되었다.

 용서는 꾸준히 연습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두렵다. 과거를 들추고, 수치의 기억으로 나를 되돌려 놓는다. 모욕을 당했을 때 분노와 창피함으로 빨개진 귓불로 나를 되돌린다.

 우선 어린 나의 모습을 위로해야겠다. 참 애썼고, 잘 견뎌내었다. 기특하다. 타인의 모욕에도 칭찬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또다시 수치와 분노가 자라거든 또 잘라내면 된다.

 대대장과 함께 모욕이 자랄 때, 나는 손톱 정리하듯 기도하려고 한다. 그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군생활 #모욕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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