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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Mar 06. 2024

이 세상, 고양이로 산다는 것

'김애란 작품' (김애란, 창비교육)

나는 나


김애란


강아지면 좋겠네

아무 때나 살랑살랑 꼬리치고

냄새나는 양말이나 물어다 감추는

철없는 강아지면 좋겠네


고양이도 괜찮아

배고프면 밥 달라 보채고

귀찮으면 발톱이나 세우는

눈치 없는 고양이


돌멩이면 더 좋아

귀도 닫고 눈도 닫고

구멍이란 구멍은 다 닫고

밤낮없이 잠만 자는

잠보


그렇지만 난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돌멩이는 더더욱 아니지


강아지처럼 가볍게

고양이처럼 실없이

돌멩이처럼 죽은 듯

살 수는 없어


나는 나니까


 고양이로 살고 싶은 때가 있다. 애인과 함께 고양이 카페에 들르곤 하는데, 그곳 고양이들의 표정에는 한껏 평온함이 묻어있다. 그 평온함은 사실 그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의 정성에서 오는 것이다. 고양이의 이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장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더니,

 "겨울이는 괜히 저렇게 심술부려요. 저 장난감 좋아하지도 않는데, 가을이가 가지고 놀면 심통이 나나 봐요." 하신다.

 사장님은 가을이가 캣타워에 장난감을 보일 듯 말 듯 숨겨 놓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가을이는 말을 하지도 않는데, 움직이는 것들 하나하나 세세하게 잘도 들여다보고 있으셨다.

 그렇게 고양이의 얼굴에 평온함이 하나씩 찾아왔을까? 나도 고양이로 살고 싶었다. 누군가의 배려와 사랑을 듬뿍 받으며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문득 '고양이로 살면 평안함을 스스로 알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그래. 고양이로 살면 누군가의 배려에 의해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만, 걱정 없이 산다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에서 야만인은 쾌락의 신세계를 설계한 이에게 가서 말한다. 자신에게 고통을 선택할 자유를 달라고. 돌멩이로, 강아지로, 고양이로 살면 고민 없이 살 수 있다. 그러나 고민 없이는 우리네 삶이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나'의 고민으로 살아갈 때 온전한 주체가 된다. 삶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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