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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환 Aug 10. 2023

괴롭힘, 서로 잘 알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회사도 책임이 있다

바리스타인 A 씨는 출근하기가 두렵다. 선임이 POS 취급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고, 연차휴가도 못쓰게 한다. 고객이 몰아닥치는 점심시간이 끝나면 선임은 다른 직원과 밥을 먹으러 가면서 A 씨에게는 포장된 김밥으로 때우라 한다.  머신을 조작하고 있으면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냐’며 고객이 보는 앞에서 소리를 지른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잠도 안 오고 가슴이 답답해 한의원을 갔더니 스트레스가 원인이란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본사 팀장님에게 하소연했다. 팀장은 ‘A 씨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선임도 좋은 사람이야. 서로 사이좋게 지내, 이런 갈등은 서로 알아서 풀어야지 회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냐’ 며 반문한다. 노동청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하자 회사는 A 씨를 다른 지점으로 발령냈다.   

   

  회사 말대로 A 씨와 선임 간 대인관계 갈등일까? 아니면 직장 내 괴롭힘일까? 갈등이라면 서로 잘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갈등과 괴롭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만일 A 씨가 겪는 고충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라면,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2023. 2. 15.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외모 비하의 모욕적 발언, 공개적 질책, 업무 배제를 이유로 자살한 캐디의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가해자(캡틴, 캐디의 관리감독자)와 사용자(학교법인)에 대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은 위법한 직장 내 괴롭힘은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이 원인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20다270503판결)를 들면서도, 괴롭힘의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위법행위 가해자(민법 제750조), 사용자의 배상책임(민법 제756조)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용자는 캐디가 캡틴에 대한 감정이나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였음에도 그를 위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고, 캡틴은 망인이 게시판에 쓴 글을 삭제하고 인터넷 카페에서 탈퇴시켜 캐디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한 사실을 인정해 법인은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았다(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3. 2. 15. 판결 2022가합70004).      


위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어서(2023나2014115) 그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위법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명확히 하였다(2020다270503판결). 이후에는 사용자(학교법인)가 괴롭힘 행위를 알거나 알 수 있으면서 조사 의무를 다하였는지, 가해자에게 징계 등의 조처를 했는지와 같은 ‘상당한 정도의 주의의무’ 준수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괴롭힘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가해자와 사용자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괴롭힘은 미묘한, 낮은 수준의 공격에서 시작해 오랜 기간에 걸친 직접적이고 강렬한 공격, 명예와 지위를 손상하고 파괴하는 행동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Einarsen, 1999). 다시 바리스타 선임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A 씨와 선임 간의 문제는 갈등이라기보다는 미묘한, 낮은 수준의 괴롭힘으로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선임의 다양한 행위가 지속하였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갈등과는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Keashly, Minkowitz & Nowell, 2020). 


괴롭힘은 특정 개인이나 조직에서 나타나는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이다(Lipsky, Seeber & Fincher, 2003). 그렇기에 괴롭힘의 원인을 찾고, 마무리할 수 있는 ‘해결’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비로소 회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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