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서준희는 감시자다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밥누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누나 동생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러브스토리와 Stand by your man 등의 복고풍 주제곡은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윤진아 대리를 통해 묘사되는 직장 생활의 애환, 데이트 폭력이 최근의 사회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직원들의 비호감을 전적으로 사고 있는 예스맨 공철구 차장은 사내에서 여직원에게 고정적 성역할을 강조하고, 직장 내 성희롱을 주도한다.
회식자리에서 고기 굽기는 여직원 몫이며, 술 따르기와 러브샷은 빠질 수 없다. 게다가 회식 2차 코스인 노래방은 조직의 단합이라며, 여직원들의 불참을 ‘기강해이’로 몰아간다.
대표이사와 처남매부 지간인 남호균 이사는 직장 내 무례함(incivility)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이사가 부르는 식사 자리를 위해 신고 있던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는다. 하지만 회식에 참여하지 않은 여직원을 대하면서 슬리퍼를 신고, 다리를 꼬고 앉아 왜 빠졌는지 다그친다. 이러한 조연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맞장구를 치며 점점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을 다룬 드라마가 직장 내 성희롱, 상사의 무례함, 괴롭힘과 같은 선정적인 장면을 활용하여 시청률을 올리는데 급급했었다면 ‘밥누나’는 뭔가 다르다.
윤진아 대리는 회식자리에서 고기 굽고, 술시중 하며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띄워 그동안 ‘윤탬버린’으로 불렸었다. 하지만 어느 날 동생의 친구였던 서준희가 등장하고부터 그녀에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남자 친구이고 싶은 서준희는 윤진아에게 원치 않는 것을 거부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윤대리가 공철구 차장에게 혼내는 자리에 개입하여 상사의 무례한 행위를 차단한다.
한편 고비마다 윤대리의 어려움을 도와준 정영인 부장은 윤진아의 든든한 후원군이다. 특히 여직원에게 고기 굽기를 시키는 공 차장의 행동을 목격하며, 자신도 남직원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자 공 차장의 행동은 중단되고 조직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공철구 차장, 남호균 이사의 윤진희 대리에 대한 무례함, 괴롭힘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이는 직장 내에서 주어지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 차장, 남이사는 조직에서 근무조건, 자금 배분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 권한을 습관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이다. 즉, 무례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이 권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Pearson & Porath, 2005). 또한 이들이 괴롭힘의 가해자로 지목될 경우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상황을 쉽게 모면할 수 있다(Doshy & Wang, 2014).
그래도 윤진아 대리가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엔 쉽지 않다. 그녀는 조직 내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진아 대리가 성희롱, 괴롭힘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된 힘은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감시자(observer)가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 내 사건은 개인의 감정을 통해 태도 및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Weiss & Cropanzano, 1996). 윤진아 대리의 상황을 목격한 정영인 부장, 서준희는 공 차장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직시한다.
이들은 윤진아의 감시자로써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상황에 개입할 수 있다(Folger, 2001).
감시자는 행위자에 대해 즉각적인 부정적 반응을 함으로써 피해자가 학대 행위로 잃을 수밖에 없는 것보다 가해자가 나쁘게 행동함으로써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을 암시하여 행위자를 벌하는 효과를 가져온다(Reich & Hershcovis, 2015).
즉 윤진아 대리가 무례함, 괴롭힘을 당하는 자리에 정영인 부장, 서준희가 감시자로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