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피신고인으로 지정된 분께 드리는 글
모처럼 맞는 휴일. 업무로 알게 된 한 대표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한 직원이 괴롭힘 신고를 당했다고. 바로 괴롭힘 피신고인으로 지목된 것. 회사가 고충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단다. 그에게 조언 좀 해달라고 한다.
40대 중반의 여성팀장인 A를 만났다. 부하 직원 B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질책한 것을 이유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다음 주에 심의위원회를 연다고 합니다. 꼭 가야 하나요?’
‘회사는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당사자를 객관적으로조사해 신고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야합니다. 만일 팀장님이 안 가면 B의 얘기만 듣고 사실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엔 가셔서 사실은 사실대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운데, 변호사나 노무사님과 함께 가면 좋을까요?'
'글쎄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B를 질책한 것을 확인하는 자리라면 법률대리인이 꼭 필요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회사 규정도 좀 살펴보세요. 만일 징계 등의 경우 소명의 기회를 부여할 때 대리인(신뢰보호인) 참여를 허용하는지요. 법원은 회사 규정에 이러한 규정이 없으면, 당사자가 요청해도 동석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도 참고하세요'
'근데 제가 가서 무엇을 얘기해야 하나요? 저도 억울한 게 한둘이 아닌데요….'
'우선 B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들어보세요. 무엇보다 왜 신고까지 하게 되었는지를요. 그리고 그가 신고를 통해 해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도 알아보세요. B가 주장하는 것은 아마도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질책한 것이겠지요? 공개석상인지, 거기에 누가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질책이 사실이라면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B가 자신을 험담하는 것에 대한 모욕감, 상실감, 그리고 허탈함, 분노를 느꼈다면, 그 감정도 인정하세요. 우발적인 상황이라면 그것에 대해 사과 뜻이 있음을 내비치세요.'
'생각해 보니 지난 7월 중순쯤 팀 회의에서 그런 거 같아요. 그렇지만 그건 B가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일 잘하라는 차원에서 몇 마디 한 건데요.'
’아무리 일을 잘하라는 차원에서 얘길 했더라도 그것이 팀원 다수가 있는 자리에서 B의 인격을 손상하는 정도로 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흔히들 오해하는데, 의도가 없어도 괴롭힘 판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징계를 받게 되나요?'
'회사는 징계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서 위원회에 가셔서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또 회의 석상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된다면 깔끔하게 인정하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피신고인이 뉘우치는 자세를 보이는지도 중요하거든요'
'B는 제게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해요. 제 체면도 있는데, 어떻게 직원들 앞에서 공개사과를 해요. 못하겠어요'
'B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팀장님도 억울하겠죠. 하지만 좀 전에 본의 아니게 회의에서 그런 말 한 것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네요. B는 먼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팀장님이 인정하길 원할 겁니다. 그리고 팀장님이 후회나 양심의 가책을 표현하고, 두 번다시 일어나질 않길 바라겠죠. 그러고 나서 필요하다면 정신적 피해를 갚도록 하세요. 이렇게 네 가지가 갖추어진 사과라면 어떨까요? 공개, 비공개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진심 어린 사과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처음엔 저도 억울하고 분했거든요. 하지만 조언을 듣고 나니 B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부 부정할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저도 생각이 깊어집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찾아왔다가, 너무나도 귀한 얘길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얘기를 하며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