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데미 동료의 갑질
— 주한미국대사관 경비로 새 삶을 시작하며
대사관 경비로 일한 지도 어느덧 넉 달째가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결과는 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용역업체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익힌 실용 영어 실력이 뜻밖의 기회를 열어 주었다.
어렵사리 주한미국대사관 경비직에 취업하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의 또 다른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인생살이는 알 수 없다”더니, 60대 중반에 다시 일자리를 얻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벅찼다.
긍정적인 사고는 언제나 기적을 낳는다. 지난 1년 동안 매일 명상을 하며 되새긴 나의 화두는 “나는 세상살이를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행복하고 평안하다”였다. 그 단순한 마음가짐이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긍정적인 마음이야말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경비원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교대 근무로 인한 건강 문제다. 근무 형태는 ‘주간(07:00–19:00) / 야간(19:00–다음날 07:00) / 휴무’로, ‘주간 2일, 야간 2일, 휴무 2일’의 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생활 리듬 속에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뼈를 깎는 자기 관리가 필수적이다.
나는 나만의 건강관리 지침을 세웠다.
1. 잠을 충분히 잘 것.
2. 시간이 허락되면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할 것.
3. 시간이 부족할 때는 요가 체조와 명상을 병행할 것.
4. 야간 근무 시에는 정해진 시간에 소화가 잘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섭취할 것. (토마토, 사과, 보리차 등)
첫 번째 야간 근무 날과 두 번째 휴무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약 4km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이 어린 동료들이 “그 연세에 어떻게 장거리를 달리느냐”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욕심을 버리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면 누구나 가능하다.”
시속 5km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달리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4km쯤은 무리 없이 뛸 수 있다. 야간 근무자는 반드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해소하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기를 수 있다.
주간 근무일(2일간)과 첫 번째 휴무 날에는 약 20분간 요가 체조와 명상을 한다. 코끝으로 숨을 길고 가늘게 단전까지 들이마셨다가, 잠깐 멈춘 후에 내쉰다. 단 1분이라도 선정(禪定)의 고요함을 느끼면 하루가 놀랍도록 안정되고 평안해진다.
대사관 경비원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구성의 다양성이다. 육군 일등병 출신부터 원사, 예비역 대령까지, 사기업의 말단 사원에서 국책은행 지점장, 중견기업 대표이사 출신까지,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학력 또한 고졸부터 ‘서울대, 고대, 연대’ 출신까지 천차만별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배경과 생활 철학을 지닌 이들이 같은 시급을 받으며 한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오랜 습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겉으로는 다정하지만, 속은 시기와 불신으로 가득 찬 이들을 ‘프렌데미(friendemy, friend와 enemy의 합성어)’라고 한다.
경비원들 사이에서는 ‘프렌데미’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한 갈등이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갑질’을 하는 동료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고통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동체대비(同體大悲)”, 즉 ‘상생이 곧 자비’라는 말이다.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통해 존재한다. 네가 없으면 나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질적으로 한 몸이다.
이 깨달음을 마음에 새긴다면, 우리의 일터는 우애와 배려로 충만한 공간이 될 것이다.
많은 경비원이 건강 문제와 동료 간의 불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은 없다. 노년의 경비원은 이미 우리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소외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간곡히 호소한다. 고용주가 먼저 대화의 문을 열어 주시기 바란다. 경비원과 고용주가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논의한다면, 반드시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결실은 결국 사회 전체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2018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