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만섭 Mar 03. 2024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펜하이머

아날로그 세대에 던진 희망의 메시지


I. 놀람(Surprised) 그리고 논란(Controversy).

 

“당신의 이름을 발음 나는 대로 한국어로 표기하면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놀람(Surprised)이고 다른 하나는 논란(Controversy)이다. 나는 당신의 영화 연출이 우리를 놀라게 했고 당신의 영화 주제는 우리 사회를 논란 속에 빠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가을 모 텔레비전이 방송국에서 방영한 핵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 박사의 전기 영화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의 만남이란 프로를 보았다. 나는 독창적인 연출로 전기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세기적인 역작에 대하여 한 젊고 발랄한 여성 패널 던진 도발적인 평가(?)에 매료되어서 놀런 감독이 진지하게 설명하는 영화 세상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아이 심정으로 날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극장으로 달려가서 오전 9시에 첫 번째로 상영되는 영화를 감상했다. 사실 나 같이 나이 칠십이 넘으면, 아무리 인위적으로 스스로를 감동하게 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나의 이러한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하듯이 칼라와 흑백 필름으로 천재 과학자의 행복과 불행 그리고 과거와 현재에 연관된 수많은 사건을 정신없이 보여주면서 나의 혼 줄을 빼앗았다. 나는 한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여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노인같이 나는 젊은 날에 음울한 현실의 탈출구로 빠져들었던 ‘제임스 딘’의 영화 장면들을 연상하면서, 어렴풋이 그려지는 역사의 윤곽을 찾기 위해서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펜하이머’는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가공할 무기 원자폭탄을 만들고 나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휩싸여서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라고 자책했다. 나는 그의 고백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함으로 원폭 개발을 중지할 충분한 명분이 생겼음에도 향후에 전쟁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는 전쟁을 꿈꾸는 자들에게 핵폭탄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보여주므로 그 단초를 없앨 수 있다는 순진한 발상에  핵 개발을 지속할 것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원폭을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할 때에는 인명피해가 없는 도쿄 해안에 이를 떨어뜨려서 원폭의 가공할 파괴력을 보여주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인명 살상의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고 이를 관측할 수 있도록 넓은 평지인 오사카를 선정했으며 인명피해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원폭을 투하할 비행기의  최적 높이를 자신이 직접 계산해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전쟁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의 구현을 위해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뺐았을 수 있다는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의문이 풀릴 때까지 ‘오펜하이머’에 대한 글쓰기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매일 새벽에 단전호흡으로 하루를 시작한 후에 책상에 앉아서 수행일지를 작성한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글을 쓰는 행위와 수행은 결코 다르지 아니하다. 내가 나이 칠십이 다 돼서 깨달았으나 되풀이하게 되는 실수는 난제에 부딪쳤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궁리라고 불리는 이러한 위기 탈출법은 그 목적과 수단을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절대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다부 지게 먹고 몇 달간 새벽 수행에 매진한 결과, 몸과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면서 자연스럽게 김원수 법사의 법문이 떠올랐다. 옛날에 수십 년간의 수행으로 대단한 경지에 오른 스님이 있었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소의 우직함을 칭찬하는 것으로 하루를 소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소를 경배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인간의 몸을 받지 못하고 소로 태어나야만 했다. 


우리가 존경하는 위대한 과학자나 예술가 들도 선지식의 눈에는 소로 태어난 스님과 같이 탐(貪, 욕심) 진(瞋, 진노), 치(痴, 어리석음) 중 이만하면 되었다고 자만하는 치심(痴心)을 극복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나는 오펜하이머가 평생 최고의 스승으로  섬긴 괴팅겐 대학교수 ‘막스 보른’이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교수  ‘에렌 패스트’에게 오펜하이머를 추천하면서 보낸 편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의 인격적인 단면을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누군가를 대하면서 그에게 선만큼 고통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는 확실히 재능은 가지고 있지만 정신 수양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매우 겸손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대단히 오만한 사람입니다”


II. 오펜하이머의 일생.

1. 기분 나쁘게 착한 아이


오펜하이머는 1904년 뉴욕에서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물리학, 화학, 문학 등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나, 학창 시절에는 운동 신경이 부족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외톨이로 여겨졌다. 


14살 때 여름캠프에서는 선생님에게 친구들의 행동을 고자질했다는 오해로 발가벗겨진 채 냉동실에 갇혀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고한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그의 어린 시절을 스스로 기분 나쁘게 착한 아이였다고 평가했다. 


2.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할 때는 굉장한 분노를 느끼는 젊은 천재


하버드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유학하여 실험물리학에 어려움을 겪어서 결국 이론 물리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948년 노벨 물리학 상을 수상한 ‘블래킷’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는 실험을 중시하는 실험물리학의 대가였다. 선천적으로 실험에 재주가 없었던 오펜하이머에게 ‘블래킷’ 교수는 실험실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만 한다고 질책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블래킷 교수와의 갈등으로 우울증과 향수병에 시달리게 된 그는 그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물리학에 대하여 인정을 받는 못 받는데 대하여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사과에 독을 섞어서 블래킷 교수의 책상에 올려놓는다. 다행히 사전에 발각이 되어서 중죄를 면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오펜하이머는 실험 물리학을 그만두고 이론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독일의 괴팅겐 대학으로 옮겨서, 닐스 보어 교수의 조언을 받아 양자역학의 화학적 응용 분야를 연구하면서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간다.


사이클로트론 개발자 어니스트 로렌스를 만남을 계기로  1943년 3월에서 1945년 10월까지의 2년 7개월 동안 원자폭탄을 설계·제작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이 시기에 대한 평가는 그의 천재성 없이는 원자폭탄의 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극찬에서부터 그가 한 일은 실제로 별것이 아니었다는 비하론까지 다양하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만일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이 세상에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으니,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 없는 세상을 갈구하는 그의 이상과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또한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이면서도 철학자, 언어학자, 요리사, 와인 애호가 이면서 이 모든 분야에 일가견을 이룬 천재였다. 그는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애송하고 뉴멕시코의 사막과 양자 물리학을 누구보다 사랑한 아름다운 감성을 가진 천재 과학자였기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고차원적인 과학 이론과 난해한 주장을 빠르게 이해하고 천재들이 가진 오만한 아집과 그들의 복잡한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었다. 


그의  리더십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지도자 상과 너무나 다르다. 지도자는 그 조직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 오펜하이머는  정치적 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주변 좌익계의 활동에 참여했고, 결국 매카시 주의의 탄압을 경험하게 되었다. 



III. 희망(Hope).



건축가 유현준은 개인적으로 ‘크리스토 놀런’ 감독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2009년 유현준이 건축 사무소를 차리고 공모전에 응모하는 등 건축가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 때였다. 수차례의 공모전에도 연달아 실패하고, 일거리도 얻지 못해서 건축 일을 포기하고 대학교수로 진로를 바꾸어야 하나를 놓고 고민에 빠졌을 때, 미국에서 그의 작품 인셉션(Inception)을 감상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적어도 예술가라면 이 정도 세계관을 보여주는 예술 작품 하나는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오기가 발동되었다. 유현준은 그런 마음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저명한 건축업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놀란’ 감독은 나 같은 70대 아날로그 늙은이에게 창조적인 삶의 가치를 일깨워준 시대의 문화 선각자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의 삶의 기저에는 권선징악의 도덕적인 삶을 중요시하는 고전주의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공리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평생 수행을 해온 사람이다. 


내가 ‘놀란’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놀란 것은 그가 지향하는 예술을 바라보면 볼수록 나 자신이 지향하는 솔직하고 정직한 삶과 그 맥을 같이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와 내가 공유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몇 가지를 열거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는 디지털을 철저히 거부한 아날로그 신봉자라는 점이다. 오펜하이머 영화의 모든 장면 중 CG로 촬영한 것은 단 한 컷도 없다. 일류 최초 핵실험 장치인 ‘트리니티’와  핵 폭파 시에 발생하는 독버섯 모양과  핵 구름 등은 모두 실제로 그 모형을 제작하였다. 특히 폭파 시 구름을 만들기 위해서 수 백 톤의 다이너마이트 폭약을 폭발시키기도 하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디지털카메라 렌즈로 촬영한 사진이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실물과 가장 흡사하다고 한다. 실체적 진실에 가장 근접한 촬영 방법은 아날로그다. 그것은 고전주의와 휴머니즘이 인간이 만든 주의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는 나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둘째로 그의 창작 방법이다.  원폭은 원자의 Atom이 부정적 의미를 가진 A와 쪼개진다는 tom의 합성으로 원소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는 기존의 통설이 깨어지면서 실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 235를 충돌시키면 원자가 쪼개지고, 그 량이 일정한 수준, 임계질량에 이르면 연쇄적으로 폭발하여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가공할 폭발력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자가 늘어나고 이야깃거리가 연쇄반응으로 에너지를 축적시켜서 가공할 폭발물이 생성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가,  폭발이 되어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진 이야기들을  모아서 창작의 줄거리를 만든다. 그는 철저하게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예술가이다. 그는 입이 아니라 눈과 귀를 통하여 보고 들은 것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는다. 

 

나는 이러한 그의 자세를 민주적인 자세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명명하자 한다. 예술 창작 행위도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글을 쓰기 전에 독서를 통해서 자기와 다른 사고를 가지고 다른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 경험하는 것이 창작의 기본이 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되는 못하는 것은 무한한 상상력의 부제에서 기인하는 바, 이는 타인이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거부하는 조급함과 비 민주적 대화법이 하나의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다.


셋째로 그는 매우 솔직한 감독이다. 인간은 실체적 진실 그 자체보다는 진실에 대한 믿음, 다시 말해서 실체적 진실에 대한 마음의 깊이에 따라서 진실 여부를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객관적인 실체적 진실과 그 진실에 대한 주관적인 마음의 믿음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놀런’ 감독은 이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는 ‘오펜하이머’가 언어와 양자 물리학의 천재이며 원폭을 개발하라는 조국의 부름을 받고 혼신의 힘을 대하여 이를 성공적으로 관철한 순수한 열정을 받친 애국자이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하고 성취감을 얻기 위하여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속성을 간과하고 현실적의 상황을 무시한 어리석은 이상주의 자라는 사실도 여과 없이 화면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영남대 김영수 교수는 "과학자는 너무 순수하고 정치가는 너무 무지하다. 그래서 이들을 중재할 중재인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나는 가공할 북한 핵에 직면한 우리에게 원폭 개발과 핵 확산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는 특정 이념과 주의 때문에 원폭의 위험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영남대 김영수 교수가 말하는 중재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朝鮮칼럼] 오펜하이머, 과학은 순진하고 정치는 무지하다

blog.naver.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