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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 정복기 II.

영어정복의 비밀, 변함없는 마음 ‘항심(恒心)’에서 시작된다.

by 최만섭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마십니다


예전에 들은 한 부부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집 냉장고엔 항상 좋은 술이 있고, 당신 좋아하는 안주도 준비되어 있는데, 왜 매일 밖에서 취해 들어오시나요?”


그러자 남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단지 술만을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인생 경험을 나누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술에 섞어 함께 마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저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하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몰입의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어 공부도 인생처럼, 재미와 의미로 채워야 한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는 본능적으로 재미없고 의미 없는 반복을 거부합니다. 토익 점수 몇 점을 올리기 위해 억지로 책상에 앉는 공부는 뇌가 설계된 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진정으로 가슴 설레는 무언가—좋아하는 영화의 대사, 노랫말의 운율, 혹은 낯선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몰입'이라는 마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어 공부도 이러한 마법을 사용해야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영어에 미쳐 살던 시절, 나의 황금기


30대 중반에 다시 시작한 영어 공부,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영어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영어에 미쳐 살았는데, 집사람은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한밤중에 영어 잠꼬대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때는 이 사람이 정말로 미쳤나 하는 걱정을 많이 했죠.”라고 실토를 했습니다.


한 편의 프로그램이 인생을 바꾸다


저는 어느 날 아침,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가 젊은 여자 대학교수님이 진행하던 영어 회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하루의 시작에 찾아온 작은 우연이었지만, 제 인생의 한 갈래를 바꾸어 놓은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영어 공부라는 새로운 길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배운 내용을 A4 용지에 정성스레 옮겨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하루 종일 꺼내어 읽고 또 읽었습니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면 마치 랩 가수가 된 듯 리듬을 타고, 팔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제스처와 함께 목청을 높여 짧고 단순한 영어 문장을 수없이 반복하곤 했습니다.


그 열정은 공부라기보다 하나의 놀이였고, 또 제 삶의 새로운 활력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노력의 산물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강사님의 청아하고 맑은 발음, 그리고 언어를 살아 있는 메시지로 전달하려는 듯한 생생한 몸짓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분의 목소리와 제스처는 낯설던 영어를 낯익은 음악처럼 느끼게 했고, 결국 저를 공부의 길로 이끌어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줄리 앤드루스, 내 영어의 첫사랑


나는 영화 감상을 매우 좋아했는데, 특히 1965년 제작된 영화 'The Sound of Music’의 주인공 ‘마리아’를 연기한 "줄리 앤드루스(Julie Andrews)"가 이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마치 첫사랑 연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이 영화는 뮤지컬의 명곡들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의 건물이며 자연 등을 아름답게 잘 담아낸 작품으로, 개봉한 지 60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많은 사랑을 받는 명작이며 20세기에서 21세기까지 무려 5차례나 재개봉했을 정도로 사랑받는 걸작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까닭은 단순히 흥미로운 줄거리나 아름다운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줄리 앤드루스(Julie Andrews)의 노래와 음률, 그녀의 탁월한 연기력과 생생한 제스처가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이 확신은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본 1970년대 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간직해 온 생각입니다.


줄리 앤드루스는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혹독하고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4옥타브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창력과 완벽한 음정 구사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한 노랫소리가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습니다. 관객들은 그 목소리를 통해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 삶의 어느 한순간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면 의사 전달에서 메시지의 총체적인 의미는 **언어가 7%, 목소리의 톤(소리)이 38%, 표정/제스처(몸짓)가 5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비언어적 요소가 의사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좋은 예시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영어는 소리와 제스처가 합쳐진 뮤지컬'이었습니다. 언어적 요소(발음, 악센트, 억양)와 비언어적 요소(제스처)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이 둘의 조화가 의사소통의 명확성과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벽, 그리고 자괴감의 터널


영어 공부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자 나는 영어 실력을 평가받고 싶은 욕구가 발동되었습니다. 스스로 평가를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 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AFKN 방송을 들을 때면 이어폰 선이 끊겼다 붙었다 하는 것처럼, 어떤 때는 확실히 알아듣겠는데 또 어떤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미국 프로레슬링을 즐겨 봤는데, **언더테이커(The Undertaker)**와 폴 베어러(Paul Bearer)가 나누는 대화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 없었죠. 그들은 '데드맨(The Deadman)'이라는 별명처럼 죽음과 관련된 속임수를 가지고 있었고, 언더테이커는 늘 관을 끌고 나왔으며 폴 베어러는 유골함을 들고 다녔어요. 비록 짜인 각본에 의한 대화였겠지만, 그들의 '죽음의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CNN을 청취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 관련 뉴스가 나올 때는 한국의 9시 저녁 뉴스와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제법 많이 알아들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하지만 특정 프로, 특히 아프리카 특집 같은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심한 자괴감을 느끼며 CNN 청취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어정쩡한 상태가 70살이 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인생과 영어의 원리는 다르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미국 방송을 청취할 수 있단 말인가? " 나는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의문은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든 분의 공통된 고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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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생과 영어 공부의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크고 작은 성공을 맛보게 되는데, 그 작은 성취들이 쌓여 결국 자신을 앞으로 이끌어 주는 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순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운명과 목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예기치 못한 계기가 찾아와 우리가 바라던 바를 자연스럽게 실현해 줍니다. 마치 씨앗이 땅속 깊은 어둠 속에서 긴 시간을 견딘 끝에 햇빛을 만나 꽃을 피우듯, 인생과 공부 또한 인내와 확신 속에서 결실을 보는 법입니다.


항심(恒心)과 그릿(Grit) –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힘


이러한 성공과 성취를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항심(恒心), 즉 '늘 지니고 있어 변함없는 마음'을 꼽겠습니다. 저마다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목표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공자께서는 항심은 타고난 마음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과 수양을 통해 형성되는 도덕적 마음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항심의 중요성은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어집니다.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가 제시한 성공의 핵심 요인인 **그릿(Grit)**이 바로 그 예입니다. 그릿은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마음을 뜻하며, 이는 공자의 항심과 매우 닮았습니다.


귀가 열리는 순간, 정상에서의 환희


영어 공부에 매진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어 정복의 문턱에 다가섰음을 직감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전에는 소음처럼 들리던 미국 앵커의 길고 복잡한 논평이 어느 날 갑자기 또렷한 하나의 문장처럼 귀에 꽂히는 경험이죠. 더욱 놀라운 점은, 이 특별한 경험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점차 그 빈도와 강도를 더해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짜릿한 성취와 성공의 기쁨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산의 정상에 선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산꼭대기에 선 사람들은 눈 아래에 펼쳐진 산의 전체적인 모습인 자연이 산 아래서 보았던 그 산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지나서 설레는 가슴에 자리 잡는 순간에 사람들은 이 세상 모두를 품었다는 자부심과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기쁨의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나는 오프라와 멜 로빈슨의 대화를 담은 팟캐스트 "어떻게 질투를 극복할 것인가? (Oprah and Mel Robbins share how to overcome jealousy"를 청취하면서 그러한 경험을 하였고, 아직도 그 감격을 느끼면서 출퇴근 때마다 이어폰을 통해서 여러 가지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영어 정복은 재능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의 선택이다


그래서 저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영어 정복은 누구나 가능하며, 그 기간은 개인의 능력 차가 아니라 ‘올바른 방법’의 선택에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경험이 모든 분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책 읽기를 즐기고 영화를 사랑하며 사유하는 삶을 사는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유용한 길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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